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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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지하 세계 관리

미국 시애틀의 구 도심은 100여년 전 발생한 화재로 지하에 묻혀버렸다. 도심을 재건하면서 구도심을 덮고 건물을 세웠다. 항구도시로 캐나다 금광으로 가는 길목 역할을 하면서 번창했던 시애틀의 지하도시는 한동안 잊혀졌다. 뒤늦게 한 관광가이드를 통해 되살아났다. 죽었던 지하도시를 구경하려면 이제는 입장료(2만여원)마저 내고 안내를 받아야 한다. 지하가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동일 토지를 두 번 거래하는 게 가능하다. 지상권과 지하이용권(광물권)이 별개로 거래된다. 지상권은 땅 위에 건물을 짓거나 소 풀을 키우는 권리이다. 지하권은 석유탐사를 하고 채굴할 수 있는 권리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대학 졸업 뒤 텍사스에서 지하권을 임차한 뒤 석유 채굴에 성공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돈을 발판 삼아 구단 텍사스 레인저스를 사들였고 대통령까지 됐다. 지상 한계를 지하에서 극복한 것이다.

빽빽이 들어선 마천루 때문에 개발 한계에 이른 뉴욕도 지하에서 답을 모색하고 있다. 로라인(Lowline) 프로젝트를 통해 지하 공간을 확보하는 중이다. 자연광을 채광기와 광섬유를 통해 지하로 전달해 버려진 지하공간을 공원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과 투자회사들이 참여했다. 한국의 자연채광전문업체 선포털(Sunportal)도 뛰어들었다. 60여년간 방치됐던 4000㎡ 크기의 지하 전차터미널이 식물원처럼 바뀐 뒤 임시 개방되자 10만여명이 다녀갔다. 서울시도 종각∼광화문∼시청∼을지로∼동대문을 잇는 지하도시 건설을 구상 중이다.

한국의 도심 지하는 지하철이 촘촘하게 연결된 데다 각종 용도의 대형 터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지하활용도가 여느 선진국 못지않다. 차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관리 능력과 책임감이다. 그제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인근에서 열수(熱水) 배관이 터져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비슷한 사고가 났다. 8월에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주민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안 보인다고 대충 덮었다가는 앞으로도 계속 화들짝 놀라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