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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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아인슈타인의 편지

“편지를 읽으며 나는 무한히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나의 작은 태양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내게는 당신이 지난날의 온 세상보다 더 뜻깊어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17세 때 첫사랑 마리 빈텔러에게 쓴 연애편지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학교에 다니던 당시 하숙집 주인의 딸인 2살 연상의 빈텔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빈텔러와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아인슈타인은 유난히 많은 편지를 남겼다.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잊을 만하면 새로운 편지가 공개돼 사람들 관심을 끈다.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 친구 등 가까운 이들에게 쓴 친필 편지들을 통해 그의 솔직한 인간적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주변 사람들과 놀랄 만큼 친근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의 편지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내밀한 생각도 담겼다. 나치의 반유대주의, 상대성이론이 원자폭탄에 활용된 점, 일부일처제 등등.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지 한 달 뒤 아들 한스에게 쓴 편지에는 상대성이론이 원폭으로 연결된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는 여성을 위로하는 편지에는 “대부분의 남성이 일부일처제적 성향을 타고나지 않았음을 당신도 잘 알 것”이라고 돼 있다.

아인슈타인이 74세이던 1954년 쓴 ‘신의 편지(God Letter)’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90만달러(약 32억원)에 팔렸다. 독일 철학자 에릭 구르킨트에게 그의 작품에 관한 생각을 적은 편지다. 아인슈타인의 신과 종교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내게 ‘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일 뿐”이라며 “성경은 존경할 만하지만 여전히 원시적인 전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편지는 예상가보다 2배 정도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큰 가치가 있다. 천재 과학자의 개인적 면모는 물론 논문이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