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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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의원 정수, 당당하게 논의하자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 400명은 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4월6일 국회에서 열린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제1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하지만 이 발언은 곧바로 수정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당 안팎에서도 논란이 일자, 문 대표는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하나의 퍼포먼스였으니까, 가볍게 한 것”이라고 넘겼다.
김달중 정치부 기자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추진한 정치 엑스포에서 ‘국회의원 숫자가 어느 선이 적당하냐’는 물음에 ‘351명 이상’에 스티커를 붙이고, “400명은 돼야 한다”는 호기로운 발언이 문 대표에게는 웃고 넘길 수 있는 ‘퍼포먼스’일지 몰라도 4년이 지난 지금의 야당들에는 당의 명운이 걸린 문제가 됐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지난 5일부터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과 연계를 시켜 안팎으로 시끄럽게 하면서다.

여야 모두 비례성 강화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례를 강화하기 위한 적정 의원 수는 얼마일까. 한때 지금보다 낮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정치 개혁 과제로 의원 정수 축소를 제시하며 “200명을 줄일 경우 2000억∼4000억원의 예산이 절감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카드로 보인다. 안 전 의원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안으로 중선거구제 또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의원 수 300명은 유지했다.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전체 의석수는 그대로 둔 채 비례 숫자를 늘리는 방안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의 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과 올해 제안한 방식과 유사한데, 이는 지역구를 줄일 수밖에 없는 방안이다. 당시에도 여야 의원들은 “우리 보고 지역구를 줄이란 말이냐”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13대 총선 때 전체 299명 가운데 76명이었던 비례대표는 최소·최대 선거구 편차를 줄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에 결국 47명으로 축소됐다. 기득권을 가진 현역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지 않기 때문이다. 50여명의 지역구를 날릴 방안은 여당 대표도, 원내대표도 없어 보인다.

결국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국민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내일신문이 지난 1, 2일 실시한 디오피니언 정례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예산 동결을 조건으로 의원 수를 늘리는 방안을 물었더니 반대가 78.5%에 달했다. 이유는 하나다. 정치 불신이다. 내 세금으로 돈을 받는 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것이다. 세비를 줄이지 않고서는 부정적인 여론을 달랠 방법은 없다.

의원 수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연동형을 압박하는 야 3당이나, 여전히 지역구를 줄여서 조정해보려는 환상을 갖고 있는 여당 모두 틀렸다.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는 개혁 없이는 국민이 선뜻 ‘세금 먹는 하마’를 키우고 싶지 않을 거다. 세비와 보좌진을 줄여서라도 정치발전을 위한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자구책이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김달중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