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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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비운의 기무사령관들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 8월 말 역사 뒤로 퇴장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역대 기무사 사령관 사진도 제거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바뀌었다. 기무사는 그동안 특무대, 방첩대, 보안사 등으로 변천하면서 남북 분단이란 특수상황에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역대 수장들의 인생도 곡절이 많았다.

1979년 취임한 전두환 사령관(당시 명칭은 보안사)은 대통령이 됐고, 그 후임 노태우도 대통령이 됐지만 두 사람 모두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다. 설화에 휘말리거나 비운에 간 사람도 있다. 방첩대장을 지낸 윤필용은 수경사령관을 하면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에게 “각하(박정희)의 후계자는 형님입니다”라고 말했다는 모함에 엮여 ‘역모죄’를 뒤집어썼다. 이 사건으로 하나회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진 뒤 전·현직 사령관 간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김재규(68년 취임, 당시 보안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을 프랑스에서 암살한 배후로도 알려졌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내 걷히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기무사령관을 지낸 이재수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한 점 부끄럼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세월호 사찰 관련 수사로 인해 군 지휘관이 버팀목으로 삼아야 할 명예가 실추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2014년 10월 갑작스레 기무사령관 자리에서 쫓겨났다. 기무사령관 출신이 갈 자리가 아닌 제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됐다. ‘정윤회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문건이 보도되기 1개월 전이었다. 그는 비선실세의 권력농단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암투의 결과로 좌천됐다는 세간의 평가를 그는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암투라면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이 드러났어야 했다. 그와 그를 아는 인사들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뒤 두고두고 회한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에게 권력농단에 대해 경고음을 울릴 기회가 없었다는 안타까움이다. 육사 동기이자 친구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그 과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실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역사는 언젠가 그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