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평화협정…아베, 패전국·전범국 족쇄 풀기 총력전 [세계는 지금]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조약 체결 문제가 동북아시아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영토분쟁을 해결한 뒤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전후 70년 이상 남겨진 과제를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고 나와 푸틴 대통령의 손으로 종지부를 찍겠다”며 “1956년 (소·일) 공동선언의 기초로 평화조약 체결을 가속하기로 푸틴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옛 소련과 일본은 1956년 외교관계 복원을 규정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양국 간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소련이 영토분쟁 4개 도서 중 2개 도서를 넘겨주기로 했다.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러·일 이르면 이달 중 교섭 돌입

아베 총리 발언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4개 도서 일괄 반환에서 2개 도서 우선 반환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평화조약 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이르면 이달 중 공식 교섭에 들어갈 러·일은 평화협정 체결과 영토반환 문제를 놓고 치열한 샅바싸움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러·일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관계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강화(講和)조약으로도 불리는 평화조약은 전쟁상태의 종료와 평화회복 선언, 강화 조건 등을 담는다. 러·일이 평화조약 체결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난 지 73년이 되도록 양국 사이의 전후처리가 미완료 상태임을 의미한다.

양국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종전 후 동유럽에서는 소련이 친소(親蘇) 정권을 잇달아 수립하고, 아시아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1949년)에 이어 6·25전쟁(1950년)이 터지자 미국은 일본을 반공·반소전선에 동참시키기 위해 서둘러 연합국과 일본의 평화조약체결을 도모했다. 그것이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다. 소련은 회담에는 참여했으나 미국과 영국 주도로 이루어진 조약 서명은 끝내 거부했다. △일본의 재무장 방지 장치가 없다는 점 △중화인민공화국이 조약 체결 주체로 초청되지 못한 점 △일본이 미국의 군사기지로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러·일 영토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쿠릴열도와 1905년 포츠머스조약(러·일 전쟁을 종결한 강화조약)에 따라 획득한 북위 50도 이남 남사할린 및 인접 도서를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러·일 간 영토분쟁 대상인 4개 도서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에 있는 쿠릴열도와 연이어 있다.

북쪽에서부터 이투루프(拓捉·일본명 에토로후), 쿠나시르(國後·구나시리),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군도다. 4개 도서를 쿠릴열도에 인접한 도서로 규정하면 러시아땅, 홋카이도에 근접한 땅이라고 보면 일본 땅인 셈이다. 소련은 종전을 전후해 군대를 진주시켰다. 강화조약 교섭 과정에서 일본 측은 북쪽의 이투루프와 쿠나시르를 미나미치시마(南千島·남쿠릴)라고 불러 사실상 2개 도서는 소련땅임을 인정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소련이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영토분쟁의 불씨를 안은 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체결됐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전후 7년 만에 미국 통치가 종료되고 일본 주권이 회복됐다. 문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하기 위해서는 유엔 가입이 필요했으나 국교 정상화가 안 된 안보리 상임이사국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실현될 수 없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소련과의 교섭에 나서 1956년 10월 영토문제는 평화조약 체결 이후로 미루는 대신에 전쟁상태의 종결과 외교관계 회복을 선언한 소·일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이 공동선언은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소련이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을 일본에 양도한다고 규정했다. 1956년 12월 일본의 유엔 가입 성사 후 1960년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신(新)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되자 소련은 평화협정체결·영토반환 교섭을 거부했고, 일본도 내부에서 2개 도서 반환이 아닌 4개 도서 일괄 반환론이 고개를 들자 선(先) 4개 도서 일괄 반환·후(後) 평화협정 체결론을 견지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전후 외교 총결산 외치는 일본 행보는

1990년대 초 소련 해체 후 경제난에 직면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한때 2개 도서를 반환하는 대신에 일본의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러시아 내부 반발과 일본의 4개 도서 일괄 반환 입장 고수로 실현되지 않았다.

최근 평화조약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푸틴 대통령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한 아베 총리에게 연내 평화조약을 체결하자고 깜짝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이에 지난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4개 도서 우선 반환론에서 선회해 공동선언에 기초한 평화조약 체결 추진이라는 진전된 입장을 들고 나왔다. 일본 보수층의 부정적 시각에도 일반 국민은 지난달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런 구상에 대해 64%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왜 종전 입장을 수정해 평화협정 교섭에 나서는 것일까. 

그 해답은 최근 아베 총리가 자주 강조하는 ‘전후 외교 총결산’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패전국·전범국의 족쇄를 풀어 전후 국제관계를 정리하고 ‘보통국가’로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헌법 제9조의 개헌과 자위대 역할 확대, 국방력 강화는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일본이 봉건체제를 결산하고 근대 국가를 향해 출발했던 메이지(明治)유신 150주년이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출사표를 던지며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삿초(薩長)동맹을 부각하며 새로운 일본을 강조했으며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과거 불행한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산업화 성공만을 내세우기도 했다.

러·일 평화조약의 실현은 전후 처리를 완결한다는 측면과 함께 향후 일본의 행보와 관련해 동북아의 불확실성을 증대하는 측면이 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국제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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