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한파에 정치 불신…금배지 후원 식어간다 [S스토리]

“감사를 담아 서한 올립니다. 당원과 국민들께 더욱 사랑받는 더불어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땀 흘리겠습니다. 아낌없는 큰 성원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최근 유권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태준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그의 후원금 계좌는 이달 초 모금 상한액을 모두 채웠다. 송 의원실 관계자는 “늘 성원을 보내주시는 지지자들께 감사드린다”며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보답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의정활동에 더욱 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표한 후원금을 채워 뿌듯한 연말을 보내는 의원실이 있는 반면, 아직 미처 계좌를 다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곳도 있다. 의원들의 후원금도 한국사회처럼 ‘빈익빈 부익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아예 “후원금 꼴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한다”며 ‘읍소’에 나섰다. 보좌진은 ‘우리 의원은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본격 홍보에 나섰다. 올해가 보름 남짓 남았지만, 김 의원에게 들어온 후원금은 아직 2100여만원에 불과하다. 보좌진은 김 의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극비 방중과 교황 방북을 적중한 것 등을 거론하며 ‘김스트라다무스’라고 별명을 붙이거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활약한 모습을 적극 홍보하는 등 후원금 모금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국회는 지금 정치후원금 모금 열기로 뜨겁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끝난 데다 통상 연말에 몰리는 정치후원금 특성상 막바지 모금 활동에 열중하는 이유다. 특히 지난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 이번 해에는 지역구 의원의 모금액 한도가 기존 1억5000만원에서 3억원까지 늘어나 다음 총선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한 의원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정치후원금 마련을 위해 각자 개성을 살린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의 후원계좌를 안내하고 있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영표·박주민·김성태·신경민 국회의원 관련 영상 및 홈페이지 홍보 화면.
유튜브 영상 캡처 및 각 의원 홈페이지
◆‘유머형’ ‘홍보형’ ‘읍소형’… 모금 방식도 가지각색

후원금 안내와 함께 모금 활동에 돌입한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 해 성과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경우다. 바른미래당 장정숙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보여준 활약을 내세웠다. 장 의원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누수되는 복지재정과 산하기관의 비위행위를 적발하는 한편,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 조성과 먹거리 안전 해결, 국민 건강 증대 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박경미 의원 역시 ‘미세먼지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공기질을 점검하고, 측정수치를 공개하도록 한 ‘학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또 피아노로 샹송 ‘눈이 내리네’를 직접 연주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박 의원은 ‘제게 필요한 건 눈이 아니라 후원금’이라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같은 당 신경민 의원도 유튜브에 후원금 모금 영상을 올렸다. 그는 “돈 있는 사람만 정치를 하게 되면 그쪽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된다”며 정치후원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같은 당 강병원 의원은 원내대변인으로 활동한 점을 내세웠다. 최근 후원금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낸 강 의원은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 밖에서 취재진과 함께 바닥에 앉아 질문에 답하고 있는 사진을 첨부했다. 그는 ‘바닥대변인’이라는 별명을 활용해, 국민의 행복을 대변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스템 구축으로 후원금을 모으기도 한다. 자유한국당의 TK(대구·경북) 지역 모 의원은 ARS 후원계좌를 열어 주위 사람들에게 후원 부탁을 했는데, 보통 10만원 단위로 후원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수천원∼만원 단위로 후원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단위별 후원액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만큼 많은 인원에게 후원을 부탁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박리다매’인 셈이다. 이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 비해 금방 후원금 상한액을 채워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후원금 납부 시 혜택을 강조한 ‘실속형’도 있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10만원을 후원하면 연말에 10만원을 그대로 돌려드린다’며 연말정산 세제 혜택을 자세히 안내하기도 했다. 
◆얼어붙은 경기에 후원금 계좌도 ‘한파’

국회의원들의 이런 노력에도 유권자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국회의원 회관에서는 경기 침체와 정치 불신 등의 여파로 후원금 모금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후원금이 특정 의원에만 쏠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타난다. 정의당 심상정, 민주당 이해찬 의원 등 인지도 높은 의원들은 이미 모금 한도를 모두 채우고 계좌를 닫았지만, 그렇지 못한 의원들은 속이 탄다.

민주당의 한 지역구 초선의원은 “모금 계좌가 현재까지 60∼70% 채워진 정도”라며 “꼭 후원금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역 연말 행사도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금했던 박주민 의원은 올해는 고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정확한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아직 계좌를 열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후원금 모금을 마친 의원실에서는 유권자들로부터 ‘후원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모금 중인 다른 의원실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국감 때 비리 사립유치원 실태를 고발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독보적’이다. 그는 국감 종료 이후 ‘보내주신 성원에 힘입어 올해 후원금이 마감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유한국당도 정권교체 후 후원금 ‘한파’를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당 의원 상당수가 여당 때에 비해 후원금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원들 경우는 5분의 1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는 후문이다. 한 재선의원 보좌관은 “여당 의원일 때는 (후원하는 사람들이) 후원목록에 이름이 올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야당이 되고 보니 목록 공개에 신경을 쓰다 보니 후원금이 줄어드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이를 의식해 후원 목록 비공개가 가능한 10만원 이하 후원금만 모집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바른미래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한 보좌관은 “제2 야당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금 과정에서 비서진이 친척이나 친구, 심지어는 전 직장 동료들의 단체 채팅방에 후원을 부탁하는 풍경은 매년 되풀이된다. 의원들이 비서진의 ‘후원 실적’을 점검해 낮은 경우 해고하는 사례들도 있다. 지역구 의원이 지방의원 등에게 후원을 요구하는 사례부터 ‘쪼개기 후원’ 등도 연말이 되면 늘 지적되는 문제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제가 많이 어렵다보니 유권자들의 지갑 열기가 좀체로 쉽지 않다”면서도 “여당의 경우 뚜렷한 개혁성과가 없고, 동력도 약화돼 진보진영에서 후원하는 사람이 감소한 것도 원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이어 “한국당도 여전히 부정평가가 높고, 당이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후원은 당연히 저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순·이도형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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