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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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장래 희망

1970대에만 해도 초등학생들에게 ‘장래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통령이나 장군, 판검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80~1990년대 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단연 과학자였다. 1970년대 이후 국가에서 차지하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과학자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까닭이다.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이공계 대학으로 몰렸다. 당시 서울 주요 대학의 자연계열과 공과대학 학과의 입학 커트라인은 의대보다 높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류가 확 바뀌었다. 정부 연구기관을 비롯해 민간 기업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이공계 분야 연구원들을 1순위로 퇴출하자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안정된 공무원과 교사,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가장 희망하는 직업은 여전히 교사였지만 건축가, 프로그래머, 프로게이머 등 희망직업이 다양해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초·중·고교생 2만7265명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조사한 결과 ‘유튜버’(인터넷방송 진행자)가 운동선수와 교사, 의사, 요리사에 이어 초등학생 희망직업 5위에 올랐다고 한다. 유투버가 ‘톱10’에 포함된 것은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20위권 밖에 있었으나 1년 새 순위가 급등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방송을 보고 자란 요즘 초등학생들의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이들은 방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는다. 방송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다른 시청자와 소통하고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를 원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유투버가 인기인 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4월 일본 화학기업 구라레가 초등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유투버가 남학생 선호 15위에 올랐다. 2016년 54위로 처음 순위에 등장한 이후 2년 새 39단계나 껑충 뛰었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에 시대상이 반영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