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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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은 정책 속도 조절 아니라 방향 전환 할 때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은 소득 감소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은이 어제 발표한 ‘최저임금이 고용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올려 최저임금 미만자와 영향자 비율이 1%포인트 늘어나면 이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각각 2.1시간과 2.3시간, 월평균 급여는 각각 1만2000원과 1만원 감소한다고 한다. 2010∼2016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최저임금을 예년보다 3배 가까운 16.4%나 올린 올해에는 충격이 훨씬 컸을 것은 불문가지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집약 산업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이 올 들어 감소 행진을 거듭했다. 최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1분기 8.0%, 2분기 7.6%, 3분기에는 7.0 줄었다. 그 결과 소득계층을 5분위로 나눌 경우 3분기 최상·최하위 소득 격차는 11년 만에 가장 큰 5.52배로 확대됐다. 한은의 연구 결과는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하고도 남는다. 터무니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빈곤 사태를 부른 것이다. 이를 청와대는 “소득통계 표본이 잘못됐다”며 급기야 통계청장까지 바꿨으니, ‘깜깜이 정책’이 따로 없다.

정부는 새해 최저임금을 또 10.9% 올리기로 했다. 탄력근로제를 손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도 전면 실시된다. 충격이 전방위로 번질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저소득층의 소득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기업·소상공인들이 너나없이 인력을 줄일 테니 ‘고용 한파’가 심화될 소지가 크다. 기업의 투자 기피 현상도 전염병처럼 번질 것임이 자명하다. ‘반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고용·소득·투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잘못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 방향 수정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 내년 최저임금을 제쳐둔 채 2020년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개편할 뜻을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 연장 검토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못된 수술을 바로잡을 생각은 않고 수술 속도만 늦춘다고 병이 고쳐지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전통 주력 제조업이 활력을 잃고 있다”고 했다. 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반시장 정책이 기업의 활력을 꺾고 있고, 그 중심에는 소득주도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속도 운운할 게 아니라 반기업·반시장 정책을 이제 폐기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중환자실로 입원하기 전에 서두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