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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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얼어붙은 기부문화

‘딸랑, 딸랑.’

급하게 잡힌 외부 일정 때문에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 구세군 자선냄비와 마주쳤다. 얼굴을 스치는 칼바람에 ‘벌써 겨울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쳤다, 무심하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십여 걸음을 걷다가 몇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나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잊은 것 같은 허전함. 그 허전함은 마음속의 풍요로움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는 신호였다.

대학생 시절 학교를 오가며 자선냄비와 마주칠 때마다 어김없이 지갑 속 푼돈을 꺼내 넣었다. 원래는 따끈한 호빵이나 어묵을 사먹을 돈이었고, 또 울적한 마음을 위로할 소주를 마실 돈이었다. 비록 배는 고프고 마음은 허전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부를 할 ‘풍요’는 있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하루종일 묘하게 배가 불렀고 빙그레 웃음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일을 해 월급을 받아 먹고사는 직장인이 됐다. 풍족해진 지갑과 반대로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남에 대한 배려도 잊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들을 점점 믿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이른바 ‘어금니 아빠’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취재하면서 살인자에게 전달된 기부금이 그의 향락과 악행에 사용된 사실을 알았을 때 배신감이 들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회사를 오가며 거대한 구세군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내가 낸 기부금이 엉뚱한 데 쓰인 것 같다’는 허탈감도 들었다.

돌아보면 사소한 오해였다. 비록 ‘어금니 아빠’가 부성애를 내세워 받은 기부금을 외제차 구입 등 부적절한 용도에 썼다고 해도 기부문화한테 책임을 물을 순 없다. 기부 단체에서 그의 범죄를 예견해 기부금을 싹둑 자를 수 없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한 구세군 건물 역시 자선냄비 모금과는 ‘풍마우불상급’이라고 할 정도로 관계가 없었다. 구세군은 서울시의 개발정책을 받아들여 소유하고 있던 상암동 보육원 부지를 매각해야 했고, 규정에 따라 그 돈으로 지금의 건물을 지었을 뿐이다. 굳이 구세군 측에 비판의 잣대를 드리우고 싶다면 멋진 빌딩을 지어 임대사업을 시작했다는 점 정도이리라.

기부는 부활의 기적을 이뤄낸다. 외롭고 괴로워 죽어가는 자를 위로하고 살려낸다. 소소한 사치를 포기하는 대신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기부의 목적이 완벽하게 달성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공자는 논어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인(仁)의 실천’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미루고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불신과 마음의 빈곤을 잠시 내려두고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어진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올겨울 다시 자선냄비를 만났다. 지난해와 다르게 구세군이 들고 있는 종의 크기가 작아졌다. 종소리도 가늘어졌다. 작아진 종은 각박해진 기부문화와 현 세태를 반영한 듯 곤궁해 보였다.

“매년 구세군 활동을 하는데 올해는 영 적네요. 작년보다도 30% 넘게 줄어든 것 같아요.” 구세군 관계자가 멋쩍게 웃었다. 차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어려운 이들을 도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만 남았다. 그가 만든 종소리가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하늘로 처량하게 울려퍼졌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