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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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업 길들이기

현 정부 들어서도 특정 기업을 안달난 것처럼 쑤셔댔다. 갈 자리 확보가 급했던 더불어민주당의 목소리가 컸다. 민주당 권칠승 원내부대표는 지난 6월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기업 경영권을 어쩌다가 손에 쥔 소수들이 전횡을 계속하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또는 상법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방만 경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물러나 있어야 했다”고 했다. 포스코와 KT, KT&G를 겨냥한 발언으로 들리는데 기업 관계자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정당만이 아니다. 정부도 산하기관·금융권을 통해 사퇴압력을 넣는 모양을 취했다. 직권 남용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죗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오죽하면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지난해 물러나면서 “정부가 제 사임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살아나지 못할 것 같아 사임한다”고 했겠는가.

올 3월 KT&G 사장 자리를 두고는 이상하리만치 시끄러웠다. 사장이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했을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분 51.8%를 갖고 있는 IBK기업은행을 지렛대 삼았다. 지시를 받은 기업은행은 KT&G지분(6.9%)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분식회계 논란을 두고 ‘CEO리스크’라면서 사장 연임에 반대했던 것.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등에서 주가폭락 등을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라며 개입을 정당화했다. 결국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 그때 인수한 회사는 세계 담배 시장 2위인 인도네시아에서 돈을 매우 잘 벌고 있다.

민간기업 KT&G 사장 교체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문건이 지난 5월 MBC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전직 기재부 공무원이 청와대의 지시로 이 계획안이 작성됐다고 폭로했다. 만약 청와대 의지대로 여권 인사가 KT&G에 낙하산 사장으로 갔더라면 이 회사의 경영이 어떻게 됐을까. 적폐청산 바람이 분 뒤 나왔을 그 성적표가 눈에 훤하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