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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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30대를 ‘맛’에 비유한다면…

“선배, 30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맛인가요?”

올해 서른살이 된 후배 C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다소 심란한 표정의 C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긴 한숨부터 쉬었다. 하늘 같은(?) 선배를 만나 술을 얻어먹으면서 겨우 푸념이나 하다니, C가 다소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기자가 기억하는 20대 시절의 C는 늘 어깨를 으쓱이던 모습이었다. 호탕한 성격에 자신감이 넘쳤던 C의 어깨는 마치 ‘뽕’을 넣은 것처럼 당당했다. 특히 그가 2년 전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그 높이는 최고에 달했다. 30대가 된 그의 모습은 달랐다. 항상 상큼할 것만 같았던 그의 모습은 날콩처럼 비렸고, 톡톡 쏘던 성격은 김빠진 콜라처럼 밋밋했다.

“직장을 잘 다니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혼자 남겨진 기분이에요.”

C의 괴로움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기자는 C에게 “취업조차 어려운 20대를 생각해”라고 시큰둥하게 대꾸했으나, 고민의 무게가 잔뜩 어린 C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축 처진 얼굴이 기자의 자화상인 것 같아 가슴이 메었다.

돌이켜보면 20대의 삶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쉽게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고 동아리라든가 스터디 모임의 장(長)을 맡아 소소한 ‘갑’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밤낮 공부해 취업 성공이라는 달콤한 성취를 이뤄내기도 했다. 20대 절정의 순간이었다.

30대가 되면서 그들은 첨예한 기성사회 계층의 ‘말석’에 앉아야 한다.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대충 웃으면서 넘길 수 없고, 인간적인 끌림으로만 사람을 사귈 수도 없다. 바쁜 일상에 치여 어릴 적 동무를 하나둘, 결국은 죄다 잃어버리고 따르는 사람 없이 낮은 자세로 쓸쓸한 길을 걷는다.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나이다.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이유는 서툰 사회생활에서 온 공포감일 것이다. 대부분의 30대는 사회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렇다고 중장년처럼 원숙한 보폭을 내딛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그런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30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믿는다. 때때로 무모했던 20대보다 성숙하고, 풍파에도 덜 흔들리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고 아름다웠던 과거에만 취해 있는 나이도 아니다.

“서른 즈음에 사업을 시작하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된 것 같아.”

서른 살이 되자마자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스타트업을 정착시킨 P의 말이다. 7년 동안 그를 만났지만 가끔은 독선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서른네 살의 P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풋풋하지도 않고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어디에나 어울릴 법한 담백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30대는 불안하다. 뚜렷하게 이뤄낸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 서른에 접어든 청년들이 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직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C에게, 그리고 기자를 포함한 모든 30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