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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사실상 성장정책 아냐… 수정 필요” [차 한잔 나누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 부르진 않아 / 16.4% 최저임금 인상률 근거 부족 / 외국 투자자들도 우려의 목소리 / 한국 경제 위기 해소하기 위해선 / 산업구조 개편 등 문제 해결해야 / 임금·성장 정책 구분 안되면 혼선
2017년 9월 한국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실상 성장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성장이 곧 ‘소득 증가’를 의미하는데,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증가를 통해 소득 증가를 이룬다’는 동어 반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나열한 인사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였다. 그가 당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쟁점과 평가’를 통해 한 지적은 지난해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 경제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거시경제분과위원이기도 한 성 교수는 지난해 12월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 전체회의에서도 “노동비용의 급격한 상승 등 비용 측면의 충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누구보다 일관되고 집요하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수정을 주문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성 교수를 만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성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기본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소득이 낮은 국민의 임금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정책이든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1∼11월)은 전년 동월 대비 10만3000명으로, 전년도 31만6000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등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업종에서 감소폭이 컸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결과다. 성 교수는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숫자인 16.4%라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어떤 근거에 의해서 결정됐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 시장의 현실, 경제 여건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금융, 거시경제 전문가다.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고, 노무현정부 때는 재벌개혁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했다. 그런 성 교수가 국내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시장 여건이나 경제 여건과 괴리돼 인상되면서 노동비용 충격이 거시적인 충격 변수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외국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이어 “경제의 많은 측면이 국내만을 보고 결정할 수 없고 다른 국가와의 경쟁이나 협력 등 국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지금과 같이 글로벌한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름으로 추진된 정책들이 의도와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조건 악화가 수출기업의 국제 가격 경쟁력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 또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우리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부풀려졌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소득주도성장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한국경제 위기의 이유로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 국제경제 환경 악화와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꼽았다. 그는 “장기적인 주력 산업 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 구조를 바꿔나가는 등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임금정책이 성장정책인 것처럼 되는 순간 산업구조 개편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성 교수는 “경제정책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모아서 정책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나는 학자의 입장에서 우리 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제가 배운 지식과 연구를 공유함으로써 더 나은 경제정책이 나오고, 의사결정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