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게스트하우스의 비명

콘도산업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 서울 근교 지역의 논밭을 갈아엎고 등장한 게 모텔이었다. 북한강변에 대리석으로 치장한 모텔들은 새로운 여가문화 공간이었다. 객실 TV 속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돈을 뜯어내는 ‘불륜 공갈 업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화재에 취약했던 모텔의 이미지 추락은 자업자득이었다.

모텔의 부정적 이미지를 깨고 등장한 게 펜션이었다. 공군 장성도 은퇴한 뒤 경기도 가평에 펜션을 지어 목가적인 생활을 꿈꿀 정도였다. 가족 단위의 깨끗한 휴식처라는 게 세일즈 포인트였다. 월풀 욕조 설치 등 인테리어가 고급화되더니 하룻밤에 50만원이 넘는 펜션이 등장하면서 경쟁자가 생겨났다.

게스트하우스였다. 저렴하고 아침식사까지 제공하니 젊은 여행객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강원도 양양은 게스트하우스 천국이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저가 숙박시설인 게스트하우스촌이 형성됐다. 고객 연령대가 주로 20∼30대이고 여행목적이 분명하다보니 게스트하우스의 바비큐 파티장에는 빈자리가 없다. 2만5000원에 바비큐와 술, 음료가 무제한 제공된다. 새로운 문화가 자라는 것은 당연. 서로 얼굴조차 모르던 청춘들이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주민증을 까고’ 말을 트고 친구를 맺는다. 이런 파티 문화는 전주에서 처음 등장해 대박이 나면서 경주, 제주 등으로 퍼졌다. 전주는 향토음식을 앞세워 파티 정착에 성공했고, 경주는 KTX의 접근성과 놀이시설이 일조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제주 여행의 공식은 ‘초저가 비행기표+게스트하우스+바비큐 파티’다. 제주 게스트하우스는 ‘사드’사태 직전까지 블루오션이었다. 숙박업에서 돈맛을 본 투자자들이 몰려갔다. 지난해 말 기준 제주 숙박시설 객실 수는 7만1884실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 객실 수가 1만2000여실(3900여 업체)이었다. 4년 만에 객실이 74% 증가한 것은 게스트하우스 역할이 컸다. 사드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숙박업 먹이사슬 구조의 맨 밑바닥에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관광지의 인기 바로미터가 게스트하우스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