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브렉시트’ 우려 속 제2 국민투표로 백지화 가능성도 [세계는 지금]

이번 달 셋째주는 ‘유럽 통합의 꿈’과 ‘영국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과 EU가 마련한 합의안을 놓고 영국 의회가 비준 투표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거쳐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은 오는 3월29일 EU와 결별을 앞두고 있지만, 그 이후 EU와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 여전히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아무런 합의 없이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제2 국민투표를 통한 ‘브렉시트 백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의 운명 좌우할 의회 비준 투표

11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오는 15일 자국 정부와 EU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비준 투표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야당뿐만 아니라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이 합의안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해 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해 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애초 메이 총리는 지난해 12월11일 이 합의안을 놓고 의회 비준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로는 큰 표 차이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한 차례 연기했다. 이어 13일 보수당에서는 메이 총리에 대한 당대표 불신임 투표가 치러졌다. 패배할 경우 당대표직과 함께 총리직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투표에서 메이 총리는 신임 200표, 불신임 117표로 자리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란표’가 100표를 훌쩍 넘어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메이 총리는 자국 의회에서 합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논란이 되는 ‘국경 안전장치’ 종료에 필요한 ‘법적·정치적 확약’을 요구하며 EU 집행부 및 회원국 정상들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지만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의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국경 통과 시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 적용)를 피하기 위해 별도 합의가 있을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키로 합의한 이른바 ‘국경 안전장치’ 부분이다. 브렉시트 강경파는 국경 안전장치의 종료 시점을 규정하지 않으면 영국이 계속해서 EU에 종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이 일방적으로 종료를 선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을 제외한 27개 EU 회원국 정상은 같은 날부터 이틀 동안 열린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재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다만 합의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논의는 가능하다며 대화의 문은 열어 두었다.
◆쉽지 않은 재협상, 벼랑 끝 몰린 메이

메이 총리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계속 EU 정상들과 ‘전화외교’를 이어갔으나 국경 안전장치 명확화와 관련해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는 지난 2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대화를 나눴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연휴 동안 두 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이와 관련해 EU 대변인은 “EU 정상들은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합의안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4일에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집행위 측은 두 사람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에 대해 우호적으로 대화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언급히지 않은 채 “두 사람은 또 접촉하기로 했다”고만 말했다.

EU와 영국 간에 국경 안전장치 문제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면서 양측은 추가 조율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EU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에 따르면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의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하더라도 영국은 오는 3월29일 EU를 자동 탈퇴하게 된다. 합의안 개정 협상을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국 의회의 비준은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합의안에 대한 의회 비준이 불발될 경우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자 EU와 영국 모두 일찌감치 대비에 나서고 있다. EU는 지난달 19일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발표했고, 영국도 분야별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경찰 당국은 아일랜드와의 국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 등의 문제에 대비해 정부에 인력 보강을 요청했으며, 영국 정부는 해당 지역에 경찰 약 1000명을 배치해 필요한 훈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대혼란이 예상된다. 영국은 EU와의 무역협정뿐만 아니라 EU 일원으로 협상해 온 168개국과의 759개 조약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 분야에서 큰 손실이 예상된다. 모든 제품은 국경에서 검사를 받아야 해 물류 시간이 길어진다. 제조업체와 소매업체는 제때 부품을 공급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이를 피하기 위해 비축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부패하기 쉬운 식품의 부족 현상이 예상되고, 의약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조기 총선? 제2 국민투표? 브렉시트 백지화?

영국 하원은 9일 의회 의사일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보수당 내 친 EU 성향인 도미닉 그리브 의원이 상정한 이 개정안은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비준 투표가 부결될 경우 정부가 3일 내에 새로운 계획을 제시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전날 하원은 제1 야당인 노동당의 이베트 쿠퍼 의원 등이 상정한 재정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의회의 명백한 동의 없이는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 준비를 위한 재정지출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합의안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는 메이 총리에게 여야가 모두 ‘EU와의 재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야당은 물론 여당인 보수당의 EU 잔류파와 EU 탈퇴파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어 의회 비준 투표에서 부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를 우려한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통과를 위해 제1야당인 노동당 의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총리실 대변인은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가 노동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동 및 환경 보호 강화 법안을 지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가 노동당 의원 발의 법안을 지지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 투표에서 노동당 내 반란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우선 노동당을 중심으로 ‘조기 총선’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당에서도 메이 총리에 대한 불만이 크지만 조기 총선으로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가 총리에 오르는 상황에 대한 보수당 의원들의 거부감은 변수다. 내각이 새로 꾸려질 경우 보수당 소속 장관들은 직책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메이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그들은 국익이 아니라 단기간의 정치적 이득을 위한 정당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아픔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만약 조기 총선이 벌어지면 노동당은 제2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노동당 의원의 80% 이상이 EU 잔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이 집권하고 제2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이 많이 나오면 EU 측과 재협상할 시간이 부족하므로 ‘노딜 브렉시트’가 유력하다. 반대가 많을 경우 영국이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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