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금융소외층만 피해’ 파업 또 할건가 [경제톡톡]

“19년 만에 시중은행 총파업에도 고객들 큰 불편은 없었다.”

지난 8일 국민은행 노조가 19년 만에 경고성 총파업을 벌인 날, 불편함을 못 느꼈다는 시민 평가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왔다. “은행 인력이 남아 돌았던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있었다. 각종 금융업무를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비중이 급증하면서 파업 당일 대다수 고객이 모바일로 손쉽게 업무를 처리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당시 기자가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강남구, 중구 등 번화가에 위치한 지점에서는 각종 매체를 통해 파업소식을 전해들은 고객 발걸음이 뚝 끊긴 상태였다. 창구직원은 “평소보다 한산한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 은평구와 관악구 일대의 고령층과 서민층이 밀집한 지역 등의 풍경은 달랐다. 비대면 거래가 서툰 고객이 많은 곳이다. 지점마다 고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는 원성이 그치질 않았다. 가까운 거점점포를 묻는 질문에 직원은 우왕좌왕했다. ‘거점점포’로 지정된 곳도 다르지 않았다. 상담인력이 파업으로 자리를 비워 대출상담이 불가능했다. “대출이 급하다”면서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가는 노인도 있었다.

직장인이 몰린 서울 종로와 여의도, 강남권 등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불편이 거의 없고 고령층과 소외계층이 밀집해 IT(정보기술)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피해가 고스란히 집중된 셈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30일까지 임금피크제 연장, 페이밴드(호봉상한제), L0직급(비정규직 텔러직군에서 정규직화된 직급)의 텔러 경력 100% 인정 등 임금단체협상에 오른 안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30일부터 3일간 2차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기자가 만난 L0직급 직원들은 “승진이 불가능하지만 경력을 모두 인정받는 사무직군(텔러직군)과 정규직이 되면서 임원 승진기회까지 주어지는 L0직군 중 후자를 택한 것”이라며 “지금 와서 텔러 경력을 100% 인정해 달라는 건 우리가 봐도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L0직급 내에서조차 크게 불만이 없는데, 노조 집행부가 왜 이 문제를 들고 나와 L1 직급과 갈등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L0 경력을 전부 인정할 경우 L0 출신 임금이 L1 직원 임금을 넘어서는 일까지 생기게 된다. 노노갈등을 부를 뿐 아니라 자칫 비정규직군의 L0 진입을 막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노동자는 사용자에 비해 약자라는 평가를 받다 보니 파업도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균 연봉이 9000만원을 넘는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은 최대 성과를 냈으니 더 나눠먹자는 것 외에 아무런 명분이 없다. 은행 내 소외 계층은 외면하고 낙후 지역 고객들 불편만 가중시키면서 제 잇속이나 챙기려는 파업에 어느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김라윤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