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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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대출로 200만명 고통… 금융안전망 늘려야” [차 한잔 나누며]

취임 100일 맞은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 신용 6등급 이하·차상위 가구 등 / 금융소외계층 약 1500만명 달해 / 대부분 정보 부족으로 도움 못받아 / 현장 다니며 제도 알리기 팔 걷어 / 2018년 4분기 맞춤대출 33%나 증가 / 금융사 출연 확대·정부 지원 필요
“재무적 어려움을 병으로 비유하자면 서민금융 상담은 진단, 자금 지원 및 컨설팅은 치료, 채무조정은 외과수술로 볼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어려움이 있을 때 서민금융진흥원을 찾아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 12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어려운 서민이 서민금융 지원제도를 잘 모르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초 취임 이후 중점을 둬 온 일도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햇살론, 미소금융 등의 제도를 알리고, 서민이 이용하기 쉽게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 원장은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지난 10일 이 원장을 만나 서민금융의 필요성과 발전 방향을 들어봤다.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금융소외자들을 껴안지 못하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서민금융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취임 첫날부터 그는 지원센터를 찾아 직접 서민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방문한 지원센터는 7곳.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진작 여기를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진흥원에 따르면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차상위 가구 등을 합치면 잠재고객이 약 15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2017년 통계를 보면 진흥원에서 33만5000명, 은행권에서 새희망홀씨 등으로 21만명이 지원받았을 뿐이다. 이 원장은 “200만명 이상이 여전히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서민금융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한 여성을 만난 게 그가 의지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원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여성은 사채 3000만원을 포함해 9000만원 정도의 채무가 있었다. 필요한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진흥원을 찾았다.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지만 연체기록 탓에 자영업 컨설팅 외에 지원해 줄 방안이 없었다. 그래도 그 여성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를 돌려보내고 마음이 불편했던 이 원장은 센터 담당자들과 회의를 열었다. 자산도 있고 상환 의지도 있는데 단지 연체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회의 결과 운영자금으로 2000만원을 지원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났다. 얼마 뒤 그 여성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산이 많은데 덕분에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남은 산을 다 넘어보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 원장은 “저도 어렸을 적 어렵게 살았다”며 “지금은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금융소외자들을 껴안지 못하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서민금융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현장 운영 덕인지 이 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4분기 맞춤대출이 전 분기 대비 33.4% 껑충 뛰었다. 서민금융콜센터 ‘1397’ 응답방식도 개편했다. 고객이 콜센터에 전화하면 서비스별 단축번호를 눌러야 하던 것을 없애고 상담사가 바로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안내하는 식으로 바꿨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이 원장은 다양한 지원제도 통합과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고용노동부, 주민센터 등이 연계돼 있지만 여전히 경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로복지공단이나 장학재단 등 다른 기관이 운영하는 지원제도도 같이 안내할 때 진정한 의미의 ‘맞춤 종합 상담 및 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원장은 “사전 신용관리에서 상담 및 지원, 사후 취업연계 등 자립지원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진흥원만으로 할 수 없기에 각 공공기관, 민간단체들과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에게 복지제도 등 관련 공부를 많이 하라고 독려하고 있는데 다들 열심히 해줘 고맙다”고 덧붙였다.

서민금융 지원 제도를 뒷받침할 안정적 재원은 필수다. 현재 서민금융은 금융권 휴면자산이나 복권기금 출연 등 일시적인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들이 사회적 책임부담 측면에서 출연 확대 등 일정 부분 역할을 해줘야 하고 정부 재정 지원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