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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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靑,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은 없다

‘만사청통’ 상황에 靑 잇단 기강 해이 사태 / ‘하인리히 법칙’의 경고 되새겨야 할 때
국정의 중추기관인 청와대에서 기강 해이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근무시간 중 골프를 쳐 전원이 교체됐다. 의전비서관이 청와대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직권면직됐다. 청와대에 파견근무를 하던 경비대 소속의 대위가 군 장성 인사 명단이 담긴 대통령 결재문서를 무단 촬영해 장교들의 단체 카톡 방에 올렸다. 인사 수석실 행정관이 군 인사자료를 외부에 갖고 나갔다가 분실한 일도 발생했다. 참으로 청와대 기강 해이 논란은 끝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청와대 정부’라고 불릴 만큼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청와대를 통하면 이뤄진다’는 이른바 ‘만사청통’(萬事靑通) 상황에서 청와대 근무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청와대가 이런 기강 해이 사태에 대해 아직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가령 청와대는 군 장성 인사 문서가 외부에 공유된 것은 보도자료 배포 이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결재문서가 단체 카톡 방에서 유통된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개인 일탈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이런 일탈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 조직관리 부실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청와대 기강 확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강 해이 사태가 발생하면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구성원이 대오각성한다.

집권당의 안이한 대응도 심각한 수준이다. ‘청와대 하수인’을 자처하는 민주당은 언론과 야당의 청와대 기강 해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사실관계는 도외시하고 정치공세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내부 고발자에 대해 인신공격에만 집중한다. 집권당이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청와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정부가 건강해질 수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청와대 수사관에 대해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다”고 했다. 이런 폄훼 발언으로는 청와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 민주당이 청와대를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은 하는 여당’이 돼야 여당의 무너진 도덕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개편됐다. 새 참모진은 기강 확립과 관련해 ‘백번 말하는 것이 한번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청와대 기강 해이 사태가 또 발생하면 현 정부도 역대 정부에서 나타난 ‘집권 3년 차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역대 정권은 3년 차 때 한결같이 권력 핵심인 청와대의 직권 남용과 도덕적 해이, 권력형 게이트, 인사·정책 실패, 당·청 갈등 등에 휩싸이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청와대의 도를 넘는 기강 해이로 대통령 운영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하면 국정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혁신적 포용국가’와 같은 정부의 핵심과제를 실현할 수 없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48권의 목민심서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공(公)과 염(廉)이다. 공직자는 오직 공적인 일에만 충실하고 청렴해야 한다. 청와대 근무자들은 이런 공렴사상을 마음속 깊이 새겨 곧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 기강 해이 사태를 접하면서 ‘하인리히 법칙’이 떠올랐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청와대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기강 해이를 사소한 것으로 방치하면 국정 몰락이라는 더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하기 시작한다. 같은 논리로 청와대가 기강 해이 하나를 방치하면, 청와대를 중심으로 전 정부 부처에 도덕적 일탈이 확산하기 시작한다. 단언컨대, 국정 운영의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에선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