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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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경의행복줍기] 행복한 영자씨의 비밀

참 이상한 일이다. 영자씨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표정이다. 사람들은 사는 모양새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는 보통사람인 영자씨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영자씨의 행복한 비밀은 새해 소망에 있었다.

새해에는 많은 사람이 자신과 약속을 한다. 금연, 운동, 저축 등 자신의 행복을 위한 마음 다지기다. 영자씨는 새해에 자신과 아주 특별한 약속을 한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마니토가 되는 일이다. 마니토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수호천사가 돼 주는 것을 말한다. 힘들 때 토닥여주고 절실히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마주 보면 무조건 웃어 주고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선물하는 것, 마니토가 주로 하는 일이다.

거창한 건 없다. 그냥 밝게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꽁꽁 언 마음이 녹여진다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누군가의 마니토가 되려면 먼저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매우 바쁘게 산다. 빨리빨리에 갇혀서 늘 허덕인다. 나 자신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데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일이 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로 시작된다면 새해의 소망으로 품어볼 만하지 않은가.

남편의 마니토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을 바라보니 비로소 남편의 양 어깨에 얹혀 있는 가장의 무게가 보인다. 경마장의 말처럼 부양의 의무를 지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남편을 위해서 무조건 웃어주는 일부터 시작해 본다.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마니토가 돼 보니 아저씨가 왜 매일 도시락이 아닌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는지 알게 됐다. 도시락을 싸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에게 따뜻한 집밥을 싸다 드린다. 물론 “아이 생일이라 음식을 좀 했어요.” 부담되지 않는 이유와 함께.

언제나 어두운 낯빛인 동네 세탁소 주인의 마니토가 되고부터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은 세탁소 안에서만 맴도는 그녀와 함께 팔짱 끼고 조조 영화도 보러 가고 찜질방도 간다. 물론 혼자 가기 싫으니까 동행해 달라고 떼쓰며.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부드럽게 풀리는 걸 보면 참 좋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녀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다. 왜 나는 엄마 아빠가 없을까. 소녀의 마니토가 되기로 한 선생님은 미술에 재능이 있는 소녀에게 생일선물로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소녀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는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에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함께 사는 사회는 매일매일 작은 기적을 만든다. 그런 기적이 쌓이면 우리가 꿈꾸는 좋은 세상이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 그것의 첫걸음은 단 한 사람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