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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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북한은 핵보유국”

2016년 미국 태평양군사령부(현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분류해 놓고 위기상황에 대비했다. 당시 해리 해리스 사령관(현 주한 미대사)은 사령부를 방문한 주요 인사들에게 북한에 대한 전시대책을 브리핑하면서 “군은 적군의 위협을 최대치로 설정해 놓고 준비한다”고 말했다. 브리핑용 지도에는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표시돼 있었다. 북한은 그해 1월 4차 핵실험을 했다.

미국의 원자탄 개발계획(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핵과학자들이 창립한 미국과학자연합(FAS)은 ‘2018 세계 핵탄두 보유 추계’ 자료를 통해 북한이 핵탄두 15개를 보유한 것으로 표시했다. 미국의 비영리기관 군축운동연합(ACA)은 이 자료를 받아 같은 해 6월에 올린 세계지도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15개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내년에는 북한이 핵탄두 20∼100개 보유할 것으로 추정했다.

많은 일반인이 접속해 정보를 찾는 온라인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세계지도에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표시해 놓고 있다. 보유량은 핵탄두 10∼20개. 북한은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비NPT(핵확산방지조약) 핵국가로 표시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는 NPT 지정 핵국가로, 이스라엘은 비선언 핵국가로 분류됐다. 이들 9개국은 수년 전부터 국제사회에서 핵무장국가로 인정되고 있다. 스웨덴의 SIPRI(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2014년 1월 발표한 자료에서 북한이 핵탄두 6∼8개를 보유한 것으로 표시했다. 당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명단 맨 끝에 북한이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주일 미군이 지난해 말 제작한 동영상에서 북한을 ‘핵보유 선언국가’로 표기한 것을 두고 시끄럽다. 영상 자료는 오래전부터 영어권에서 공유했던 내용이다. 미국은 외교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북 협상의 목표가 핵 폐기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셈이지만 대책을 세울 땐 최고 위협을 상정한다. 미군이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규정했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우리가 쉬쉬하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