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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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방백서 ‘북한은 적’ 삭제… 과도한 北 눈치보기 아닌가

문재인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된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란 표현이 삭제됐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유지돼온 ‘북한은 적’ 개념이 8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응징보복(KMPR)’이라는 용어도 빠지고 대신 ‘전략적 타격체계’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용어가 삭제되면서 국방부의 ‘북한 비위 맞추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방부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면서도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환경이 조성됐다”고도 했다. 국방부의 안보상황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 ‘북한은 적’ 표현의 삭제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결과라면 이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이 해소됐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되레 북한 비핵화 공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징후들만 속속 드러나는 판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그제 북한이 핵무기 실험 중단 이후 로켓과 핵탄두를 빠르게 대량생산해 왔고 핵폭탄 갯수가 20개 이상으로 늘 것이라고 추정했다. 주일 미군사령부는 아예 북한을 15개 이상의 핵무기를 지닌 핵보유 선언국으로 규정해 우려를 더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무기 생산 중단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강조했지만 허언으로 볼 만한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국방부의 ‘북한은 적’ 표현 삭제는 군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핵무기와 120만명의 정규군을 보유한 북한이 아니면 누가 우리의 적이란 말인가.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우리만 적 개념을 없애면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꼴이 된다. 안보 자해행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병들의 안보인식을 흐트러뜨리고 북한에 그릇된 신호를 줄 목적이 아니라면 ‘북한은 적’ 표현 삭제는 철회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군사적 신뢰 조성이 이뤄진 뒤에 삭제해도 늦지 않다. 군마저 북한 눈치를 본다면 국가안보는 누구에게 맡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