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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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미래의 가전은 철학이 우선이다

AI기술 넘어 초인공지능 도래/모든 것에 디지털 전자화 적용/개인의 정보·지능 오픈될 수도/어떤 철학 반영할지 고민해야
3∼4년 전 까지만 해도 전자 회사나 전문가에게나 관심을 끌었던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가 이제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는 참가자, 참가 전시업체 수 모두 이전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CES는 1967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돼 이제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섰다. CES는 새로운 가전 제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미래의 트렌드를 읽기 위해 많은 참가자가 찾고 있다. 올해 CES 참가자는 35만명, 참가 전시업체는 1만5000개가 넘는다. 한국의 나노 전시회, 반도체 장비 전시회 참가자가 5000명 정도이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시회를 통해서 IT·가전 분야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는 TV, 80년대는 개인용컴퓨터(PC), 90년대는 디지털로의 전환을 들 수 있다. 가장 큰 데이터는 화상에서 나온다. 이로 인해 80, 90년대는 값싼 데이터를 저장하는 콤팩트 디스크(CD)와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같은 저장매체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90년대 들어 가장 큰 전환점은 개인용 전화기의 출현으로, 무선 네크워크가 저렴화되면서 개인이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개인용 전화기에 카메라가 장착되기 시작했다. TV 역시 고화질(HD) TV로 진화하고 비디오 게임을 지원하기 위한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광범위 하게 채택됐다.

박영준 전 서울대 교수 더포스 컨설팅 자문위원
두 번째 전환기는 2007년 애플사가 아이폰이라는 개인용 디지털기기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개인이 ‘모바일로 PC를 손바닥’에 쥐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가전기기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이전은 PC나 화상 콘텐츠를 저장하는 저장매체가 주로 자리를 차지했다면, 이후 10년은 가전제품 자체가 다양화됐다.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전 제품화 됐다고 할 정도이다. 이로 인해 2016년부터는 가전전시회에 전기자동차가 등장하고, 인공지능(AI) 기술과 제품이 주목받게 됐다. 이제는 자동차가 엔진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심지어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자동차 업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후 주목할 분야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스마트홈, 디지털 헬스케어, e스포츠, 그리고 지속가능한 복원력을 갖춘 스마트 도시를 꼽고 있다.

지난 30년 이상을 ‘미래의 기술’로만 치부했던 AI 기술이 이제 보편적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앞으로 인간의 뇌와 같이 자율성을 가진 초인공지능(ASI)의 도래를 점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기반엔 역시 반도체와 무선 네트워크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가 가전 전시회에서 독립적으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지만 메모리, 데이터 처리칩, AI 처리칩 등이 가전 기술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IT 업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인 리사 수 AMD CEO가 올해 CES에서 대표 연설로 ‘반도체 칩이 게임, 엔터테인먼트, 가상현실(VR) 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소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면 과연 가전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해답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것에 ‘디지털 전자화’를 적용시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전자화는 TV산업, 게임산업을 넘어 인간의 모든 생활에 침투할 것이다. 또 자동차, 로봇, 의료 서비스, 의식주 관련 모든 것이 가전이므로 비교적 시장 진입이 늦은 인간 친화 로봇이 고령화 트랜드를 지원하는 중요 가전 용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 헬스 역시 가전 분야로 들어오고 식품 공급 서비스 체계도 마찬가지로 냉장고는 단순한 식품 냉장소가 아닌 식품의 신선도와 사용자의 기호를 반영한 식품 주문 단말기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미래의 가전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철학’이라고 영국의 BBC방송은 말한다. 이는 가전이 개인의 정보와 지능을 오픈하는 데 있어서 어떤 철학을 취하는가가 가전 발전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말이다. 이를 미뤄 볼 때 향후 개인의 자유, 프라이버시, 사회적인 합의는 ‘가전 강국’인 한국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박영준 전 서울대 교수 더포스 컨설팅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