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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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연금 첫 주주권 행사, 기업경영 개입 나쁜 선례 남길 것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내달 결정/기업 길들이기 악용 소지 높아/연금운용 독립·투명성 확보 시급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첫 주주권 행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어제 회의를 열어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두 회사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여부와 행사 범위를 검토해 보고토록 결정했다. 두 회사의 주주총회가 3월에 열리는 점을 고려해 2월 초까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이후 개별 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검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에선 주주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한 정부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어제 회의에서도 위원 11명 중 8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안건이 상정됐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의에서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안건을 논의하는 오늘 자리는 수탁자 책임 원칙을 이행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2.45%,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의 7.3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작년 3월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303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의 명분으로 가입자 이익 보호를 내세우지만 갑질 논란을 빚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손보기 성격이 짙다. 조 회장 일가와 회사는 이 사건으로 11개 국가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고, 조 회장은 사익 편취·배임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마당에 주주권 행사까지 발동한다면 과잉 조치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다른 기업들에게도 ‘권력의 눈 밖에 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줄 게 뻔하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세계 10여개국에서 도입됐지만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기금운용본부장마저 물러나야 하듯이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주권 행사가 자칫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나 연금사회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국민연금은 지금 스튜어드십코드 발동에 한눈팔 처지가 못 된다. 연금재정 고갈 우려와 운용수익률 악화라는 이중 위기를 맞고 있다. 운용수익률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0.57%를 기록해 10년 만에 마이너스권으로 추락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 재정 고갈 시기가 빨라져 2200만 가입자의 노후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기보다는 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내부개혁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