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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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중국의 검열산업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은 황음무도 행태로 역사에 남은 군주다. 자신의 권력 장악을 결정적으로 도운 신하 최저의 처를 탐하다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짜 얘깃거리는 따로 있다.

최고 실력자가 된 최저는 사관에게 “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기록하라”고 명했다. 사관은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최저는 사관을 죽였다. 사관에겐 중, 숙, 계라는 세 동생이 있었다. 후임으로 임명된 중도 똑같이 기록하고 죽임을 당했다. 숙도 마찬가지였다. 맨 마지막에 불려온 막내 계도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가 기가 막혀 말했다. “형 셋이 다 죽었는데 생명이 아깝지 않으냐. 내가 시키는 대로 쓰면 너를 살려주마."

계가 답했다. “사실을 바르게 기록하는 것이 역사를 맡은 사람의 직분”이라고.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은 중국에선 문자옥(文字獄)이다. 그 사례만으로 단행본(‘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을 쓴 저술가 왕예린(王業林)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문자옥 특징을 간추렸다. 지금이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요즘 중국 인터넷에서 ‘빈 의자’ 사진은 문제가 된다.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사오보의 시상식 불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란다. ‘쌀토끼(米兎)’ 단어도 금기다. 당국이 꺼리는 ‘미투’와 관련한 신조어여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유관한 ‘시황제’, ‘종신제’ 등의 단어가 들어간 콘텐츠 검색이 차단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자옥도 진화한다. 현대는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 검열의 기본대상 단어만 10만개라고 한다.

중국 인터넷시청각프로그램서비스협회는 지난주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관리 규범’을 발표했다. 업체들에 사전 검열을 요구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검열공장’이 중국 신산업으로 뜬다고 전했다. 검열공장은 인터넷 세상을 감시할 손발이 모자라는 당국을 대신해 권력층 심기에 반하는 내용을 걸러낸다. 콘텐츠 단속이 특기다. 이런 분야가 젊은 인재들을 빨아들인다니,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검열공장을 앞세운 중국이 진정한 의미의 G2(주요 2개국)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답하기엔 입맛이 너무 쓰다.

이승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