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명동예술극장의 숨은 가치

“기재부 공무원이 그러더라고요. 하루 다섯 번 공연하면 안 되냐고.”

공연계를 담당하던 시절, 명동예술극장 관계자들과 대화 중 이런 얘기가 나왔다. 모여 있던 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공연 생리를 모를 수밖에 없는 공무원의 현실성 없는 제안에 자동으로 나온 반응이었다. 
송은아 사회2부 기자

기획재정부 관계자로서는 ‘하루 5번’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 국립기관인 명동예술극장은 서울 명동의 금싸라기 터에 있다. 지난해 평당 공시지가는 7967만원. 연극 전용인 이곳에서는 하루에 많아야 두 번 공연한다. 5만원 티켓으로 전체 558석을 다 채운다 해도 한 회 매출은 3000만원 정도다. 준비 기간에는 며칠씩 쉰다. 자본의 논리로만 보면 이런 비효율이 없다. 재정을 튼튼히 해야 하는 기재부 담당자 입장에서는 많이 양보한 발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연은 사람 손이 필요한 아날로그 분야다. 시장도 한정적이다. 하루 2회 공연조차 간단치 않다.

명동예술극장이 최근 화제에 올랐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단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곳을 K팝 전용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대표도 청신호를 보냈다. 논란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용도변경은 검토한 적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소식을 듣는 순간 씁쓸했다. 명동이 더 북적이길 바라는 상인회의 제안이 이해되면서도 아쉬웠다. 연극이든 K팝이든, 관객을 ‘지갑’으로만 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모든 일에서 당장의 ‘효율’과 ‘이익’을 따지는 현 세태의 축소판을 보는 듯해 입맛이 썼다.

‘문송하다’는 인터넷 신조어가 유행이다. 취업하기 힘들고 돈 버는 데 보탬도 안 되는 문과여서 죄송하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효율성 낮은 분야는 죄스러워진 시대다. 연극을 포함한 순수예술 무대 상당수도 돈의 관점에서 보면 무용(無用)에 가깝기에 ‘문송’하다. 공연산업 구조 자체가 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큰 수익을 담보하기 힘들다.

꼭 공연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얼마나 소비되는지가 기사 판단 기준의 하나가 되면서, 애초에 댓글이 붙기 힘든 성격의 기사들은 더불어 죄송해졌다.

대중의 관심이나 수익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무용하다고 꼭 가치가 없는 것일까. 철두철미한 셈법만이 정답일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는 한때 ‘한물, 두물 간’ 대학가 중 하나였다. 개성 없는 상업거리라 젊은이들의 외면은 당연했다. 신촌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건 해외 K팝 팬도, 거대 상업자본도 아니었다. 시민·구청·상인이 손잡고 문화로 색과 온기를 더하자 매력적인 거리로 살아났다.

서대문구가 2014년 연세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할 때 일부 상인들은 주차를 못하면 고객이 안 오리라 우려했다. 결과는 달랐다. 걷기 좋은 거리가 되고, 여름 물총축제, 가을 맥주축제가 열리자 연세로는 다시 젊음의 거리가 됐다. 무명 음악인들이 버스킹에 쏟는 순수한 열정이 신촌을 다시 찾고 싶게 했다.

거리와 도시, 사회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차가운 ‘돈의 논리’ 사이에 기대 쉴 수 있는 쉼표 아닐까. 문화는 삶의 쉼표다. 명동에 더 많은 발길을 불러들이고 싶다면, 눈앞의 뻔한 이윤보다 무용한 것들이 더해질 때 생기는 여유와 매력을 생각해 봐야 한다.

송은아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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