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러시아 남진 저지 목적 20C초 3차례 동맹 맺어 [세계는 지금]

영일동맹 기본엽서
영·일의 준(準)동맹 관계 형성은 20세기 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립이라는 격동 속에서 대한제국 국권 침탈로 이어진 구(舊) 영·일 동맹을 연상시킨다. 북·미 대화와 한반도 화해라는 정세 변동 속에서도 주변국 동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과거 러시아 남진(南進)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세 차례 동맹을 결성했다. 영·일 군사협력 대상만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뀐 셈이다.

영·일은 1902년 1월 처음으로 동맹을 결성한다. 동맹조약에는 ‘영국은 청나라에, 일본은 한국에 각각 특수한 이익을 갖고 있으므로 제3국으로부터 그 이익이 침해될 때는 필요한 조처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선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일본은 영국의 지원으로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해 한반도와 만주에서 러시아 세력을 축출하고 한반도에 독자적으로 침투할 실질적인 우선권을 확보했다.

러일전쟁 전황이 일본이 우세한 상황에서 영·일은 1905년 8월 2차 동맹을 결성했다. 2차 동맹 때는 양국 중 한 나라가 제3국과 교전 시 나머지 한 나라가 참전하는 자동참전 조항이 삽입돼 동맹의 성격이 공수(攻守)동맹 형태로 격상했다. 특히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국 추진을 영국이 승인했다. 같은 해 5월 미·일 간에는 당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육군장관과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 사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다. 이 밀약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서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미·영의 내락을 받은 일본은 그해 11월 을사늑약(勒約)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뺏은 데 이어 1910년에는 결국 강제 병합했다.

1911년 7월 체결된 3차 영·일 동맹에서는 제3국과 교전 시 자동참전하는 대상의 예외로 미국을 규정했으며, 3차 동맹에 근거해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21년 12월 미국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4개국 조약이 성립되면서 영·일 동맹은 폐기됐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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