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친근한 국회를 기대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한 올해 국정연설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최고의 주목거리였다. 모든 언론이 2월 말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내 시선은 국정연설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한 소년에게 쏠렸다. 조슈아 트럼프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성이 같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그는 백악관 초청으로 의사당 방청석에서 국정연설을 지켜보았다. 소아암 투병 어린이 그레이스 엘린과 함께였다. 미국 언론들은 연설 도중 조슈아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도형 산업부 기자
외국 의회에서 어린이들은 낯설지 않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손녀 벨라 코프먼은 지난 1월 하원의장 선출 투표 당시 할머니 펠로시에게 의원들 표가 몰리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펠로시는 자신의 투표 차례에 손녀 손을 잡고 일어났고 벨라는 할머니의 이름을 외쳤다. 벨라 외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의사당을 찾았다. 다수 의원들이 자신의 아들·딸, 또는 손자·손녀와 함께 회의장에 들어와 투표했다. 유럽의회에서는 종종 의원이 잠든 아이를 둘러업고 투표를 하거나 젖을 먹이는 풍경이 사진으로 찍힌다.

관심 있게 지켜본 이유는 우리 국회에서는 언제쯤 저런 풍경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 국회는 너무나 ‘권위적’이다. 본회의장에는 국회의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보좌관이 급한 일로 의원과 이야기하려 해도 의원들이 회의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육박전이 펼쳐지곤 했던 과거 ‘동물국회’ 때 싸움을 의원 선으로 제한하기 위해 확립된 관례 같은데 국회선진화법 이후로는 완화해도 되지 않을까.

방청석과 본회의장 간 거리도 멀다. 본회의장 출입구는 국회 본청 3층인데 방청석 출입구는 4층에 있다. 방청석과 본회의장 간 ‘소통’은 사실상 어렵다. 방청석에서 소리라도 내면 엄격히 규제한다. 방청석에 앉아 있으면 국회 방호직원들이 수시로 다가와 소리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박수를 치지 말라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본회의장에서 방청했을 때, 박수를 치다 국회 방호직원들에게 제지를 받은 적이 있다. 낸시 펠로시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이었다면 손녀 벨라는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지르다가 회의장 밖으로 쫓겨 났을 테다. 조슈아는 졸다가 혼이 났을 테고.

우리 국회도 어느 정도 변하고 있긴 하다. 16년 전 동료 의원들 질타를 받았던 유시민의 ‘면바지’는 이제 입고 와도 별다른 주의를 못 끄는 편이고, 화려한 무늬의 넥타이나 컬러풀한 재킷을 입고 와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변하고 있다지만 ‘옷’만으로는 열린 국회를 보여줄 수는 없다. 손녀가 본회의장에 들어와 “할머니가 의장이 됐어요”라고 외치고 주위 의원들이 환하게 웃는 풍경이 나올 때 우리 국회는 엄숙한 공간에서 친숙한 공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7년 넘게 국회를 출입한 기자의 마지막 소회다.

이도형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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