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데스크의눈] N포 세대의 눈물

고령화·저출산 탓 저성장 늪 빠져/청년들 취업·결혼·내집마련 먼 꿈/정부·국회는 아집에 민생 ‘뒷전’/우리는 후대에 무얼 남길 것인가
2010년대 초 일본에 ‘사토리(さとり) 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잃어버린 20년’의 불황에 나타난 20∼30대 청년층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토리는 일본어로 ‘득도, 달관’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것도 없고, 의욕도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것을 빗댄 말이다. 직업을 구하지 못하자 대학진학의 꿈을 접고 여행, 자동차, 명품옷에는 관심 없이 세상에 적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유형의 ‘N포세대’가 있다. 한때는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등을 포기해 3포, 5포, 7포 세대로 불렸다. 지금은 꿈과 희망 등 포기할 게 너무 많아서 N포로 칭한다. 물론 경제상황이 다른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 다만 경제·사회적 환경이 젊은 층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의미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편하게 살려는 젊은이들의 치기’라는 호사가들의 말로 치부해버리기엔 상황이 엄중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젊은이들이 포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희망을 포기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들의 꿈을 짓밟은 것이다. ‘흙수저, 흙턴(허드렛일만 계속하는 인턴), 빨대족(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존하는 사람)’이란 말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김기동 사회부장
우리는 196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해마다 3% 이상의 고도 성장을 해왔다. 이젠 여건이 180도 달라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앞으로 50년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6%로 내다봤다. 전 세계 평균(2.9%)보다 훨씬 낮다. 저성장 시대의 위험성을 위정자들과 정책당국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는 “저성장은 세계적 현상이고,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저성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혁신성장이 설 자리가 없다. 저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을 0.97명, 출생아 수를 32만5000명으로 잠정 추계했다. 역대 최저였던 2017년의 1.05명보다도 낮다. 이대로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출산율 0명대 국가’라는 불명예를 떠안는다. 미국의 저명한 인구 문제 전문가 필립 롱맨은 저서 ‘The Empty Cradle’에서 경고했다. 요람속의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 그곳은 바로 재앙을 예고하는 사회라고.

최근에는 ‘실업률 9년 만에 최고’, ‘실업자 수 19년 만에 최악’, ‘취업자 수 증가 1만9000명’이라는 고용성적표까지 받아들었다. 1월 실업자 수는 122만4000명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123만2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많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현 정부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럽다 못해 초라하다.

저출산·고령화와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가 맞물리면서 가뜩이나 경직된 고용시장은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물론 고도성장의 대가는 혹독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중산층 붕괴, 생태계 파괴 등을 동반했다.

과거 고성장에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급속한 성장률 하락보다는 저성장의 연착륙이 필요하다. 경제는 물 흐르듯 흘러야 한다.

OECD 국가 중 최고 실업률과 최저 출산율은 그간 고도성장이 한계에 달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가 자리하고 있지만,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다. 곳곳에서 돈을 벌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소상공인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울분을 토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국회는 태평세월이다. 올 들어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다. 과거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채 진흙탕 싸움을 하느라 민생은 뒷전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고 자리지키기에 급급하다. 미래세대에 국가부도가 아닌 국가해체라는 유산을 남겨줄까 겁난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다. 언제까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는 유행가만 불러야 하나.

김기동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