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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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가 자꾸 빚 갚아주면 도덕적 해이 판치게 될 것

정부가 또 개인 채무 탕감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신용회복위원회는 그제 기초수급자와 장애인연금 수령자, 70세 이상 고령자, 1500만원 이하 빚을 10년 넘게 못 갚는 연체자 등 취약계층의 빚을 최대 95% 깎아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원금을 대폭 깎아준 뒤 3년간 성실히 상환하면 남은 빚을 없애주는 방식이다. 일반 채무자도 미상각 채무 원금이 최대 30% 감면되고 상각채무 원금 감면 비율도 60%에서 70%로 늘어난다.

문재인정부 들어 발표된 개인채무 탕감대책만 벌써 세 번째다. 2017년 7월 금융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5조7000억원을 소각했다. 지난해 12월엔 1000만원 이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소액 연체자 159만명의 채무 6조2000억원을 대상으로 탕감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빚더미에 허리가 휘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의 경제생활 복귀를 돕겠다는 선의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이로 인한 부작용은 살펴야 한다. 우선 ‘빚 안 갚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까 우려스럽다. 버티면 정부가 부채를 탕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가 힘들게 빚을 갚으려 하겠는가. 빚을 갚는 성실한 사람만 바보 취급을 당하는 풍조가 만연될 수 있다.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빚 탕감으로 손실을 보는 금융회사를 위해 원금 탕감분을 세법상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국민세금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개인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채무탕감은 개인 부채 해결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응급처방일 뿐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 법원의 개인 회생·파산 등 구제 절차가 있는데도 빚 탕감을 자꾸 남발하면 형평성 논란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자들이 자기 힘으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일자리 지원 등을 통해 빚 갚을 능력을 제고시키는 것이 상책이다. 후유증이 빤한 하책은 가급적 멀리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