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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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외모 가이드라인

가수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를 한국에 소개한 뒤 사회가 소란해졌다.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졌다. 그러자 경찰이 자를 갖고 다니며 무릎 위 20㎝ 이상 올라가는 치마를 단속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외국인은 공항에서 입국을 불허했다. 단속 근거는 경범죄처벌법.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됐다. 긴 머리 청년들도 단속대상이었다. 경찰은 1974년 6월 장발족 단속에 돌입했다. 1주일간 1만여명을 붙잡아 현장에서 머리를 자른 뒤 풀어주었다. 거부하면 즉결심판에 넘겼다. 사회의 기풍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프라이버시’ 규제가 정당화되던 시절이었다.

북한은 오늘날에도 이런 단속을 한다. 지난해 동강치마(미니스커트)를 비롯해 머리 염색, 망사스타킹, 영어가 새겨진 옷에 대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비사회주의적 행태라는 명분이다. 모두 벌금형이다.

외모 가이드라인은 서구사회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관점이 다르다. 풍기문란이라며 단속하는 게 아니라 인권에 초점을 두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공중보건법을 제정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페인 마드리드 패션위크도 말라깽이 모델이 출연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그렇다. 2006년 우루과이 출신의 패션모델 자매 루이셀 라모스와 엘리아나 라모스가 과도한 다이어트로 숨진 뒤 만들어진 모델 보호 장치이다. 생명 보호를 위한 지침이니 수긍이 간다.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퇴행적이다. ‘성(性)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발표했는데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아이돌 그룹의 외모가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 비슷한 메이크업”이라며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방송통신심의위의 ‘방송심의 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조항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정에는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이런 것을 두고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 해야 하나.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