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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밀양 송전탑 반대' 憲訴 각하… "경찰력 행사 위헌 아냐"

2014년 밀양 송전탑 반대용 움막 철거 때 격리된 주민들 憲訴 제기 / 헌재, 4년간 심리 끝에 지난해 8월 "경찰력 투입 불가피했다" 각하 / 대법원도 유죄 확정… "이런데도 사면해야 하나" 법조계 우려 '확산'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불법시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경남 밀양 주민들 재판이 최근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끝났다. 그들은 ‘형의 확정’이란 요건을 충족해 청와대가 곧 단행할 3·1절 특별사면 검토 대상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송전탑 반대 시위자들을 건설공사 현장 입구에서 강제로 퇴거시킨 정부 조치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이 내려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만약 유죄 판결 확정 후 불과 10여일 만에 특사가 이뤄진다면 국가 공권력 경시 풍조가 더욱 만연할 것이란 우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헌재, '송전탑 반대 주민 강제분리는 부당' 憲訴 각하

20일 헌재에 따르면 밀양시 주민 등은 지난 2014년 8월 “경찰의 부당한 조치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청구 약 2개월 전인 같은해 6월 이뤄진 송전탑 건설공사 현장 입구의 움막 강제철거를 문제 삼았다. 당시 해당 움막에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주민 등이 머물며 공사차량의 현장 진입 등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에 밀양시는 행정대집행을 통한 움막 철거에 나섰는데 철거집행이 이뤄지는 동안 밀양경찰서는 움막에서 주민 등을 강제로 분리한 뒤 다른 장소로 퇴거시켰다.

헌법소원 청구자들은 청구서에서 “철거대집행이 실시되는 동안 경찰이 우리를 움막 밖으로 강제로 이동시킨 행위, 움막에의 접근을 막은 행위는 신체의 자유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헌재는 4년 넘게 심리한 끝에 지난해 8월30일 재판관 5(각하) 대 4(위헌) 의견으로 헌법소원을 ‘각하’한 것으로 세계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각하란 헌법소원 제기에 필요한 법률적 자격을 갖추지 못해 기본권 침해 여부를 살펴볼 것도 없이 심리를 그냥 종결하는 처분을 뜻한다.

◆"움막 안에 도끼, 곡괭이 등 즐비… 경찰 투입 불가피"

기자가 당시 결정문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비록 결론은 각하였으나 사실상 ‘합헌’ 취지에 가까운 결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헌재는 먼저 “이 사건 움막들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실시할 당시 움막 내부에는 도끼, 낫, 곡괭이, 각목 등 각종 위험한 물건이 비치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LPG가스통이나 휘발유통 등 폭발이나 화재의 가능성이 있는 위험물도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마을 주민은 움막 안에서 쇠사슬로 자신을 결박하고 그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연결한 후 다시 쇠사슬을 움막의 쇠기둥에 연결한 상태로 있었다”고 적시해 당시 경찰력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했다.

결국 헌재는 “헌법소원 청구인들 주장을 살펴봐도 이 사건 강제조치로부터 위헌적 경찰권 행사로 판단될 수 있는 일반적 징표를 찾을 수 없다”며 “이 사건 강제조치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이 일반적인 헌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밀양 송전탑 관련) 강제조치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개별적 특성이 강한 공권력 행사로서 앞으로 반복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헌재가 헌법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 처분했다.

◆판결문 잉크 마르기도 전 사면? "법치주의에 빨간불"

이에 맞서 재판관 4명이 “당시 경찰이 일부 주민을 상대로 내린 이동제한 조치는 헌법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란 반대의견을 냈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반대의견에 선 이는 유남석(현 현재소장)·이진성(전 헌재소장)·김이수·안창호 4명으로 이들 중 유 헌재소장만 뺀 3명은 지난해 임기만료로 퇴임했다.

최근 대법원은 밀양 송전탑 건설공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주민들에 대해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윤모씨 등 밀양시민 10명의 상고심에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 등을 선고한 것이다. ‘주민들의 불법시위를 막은 조치가 위헌적 경찰권 행사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헌재 판단과 일맥상통한다.

실제 대법원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송전탑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실현돼야 할 법치주의를 배격하는 결과”라며 “합당한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청와대는 유죄가 선고된 밀양시민들을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형의 확정’이란 요건이 충족됐으니 판결 확정으로부터 고작 열흘이 지났어도 엄연히 특사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유죄 확정 판결문이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휴짓조각이 되는 셈”이라며 “법의 권위와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