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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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불편한’ 패키지 해외여행, 누구의 잘못인가

“허허….”

순간적으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윗사람들도 대부분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올해 설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 도중 벌어진 일이다. 급하게 여행계획을 세운 데다 대만은 첫 방문이었기에 한 중소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했다. 항공편은 물론 숙소와 식사까지 모두 챙겨줘 큰 불편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날 무척이나 어색했던 그 1시간여를 제외하고는.

여행 둘째 날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타이베이의 한 상가건물 지하로 인솔했다. 깔끔하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드는 곳이었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자 말끔한 옷차림의 직원들이 한국어로 각종 의약품과 차(茶), 지역 특산물 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쉬이 지갑을 열지 않았다. 직원들의 움직임이 더 분주해졌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기자는 흡연을 핑계로 자리를 떴다.

건물 앞에서 만난 기자 또래의 가이드 역시 민망한 듯 별다른 얘길 꺼내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들이 쇼핑몰 등에서 팔린 상품 금액의 일정 비율을 소개료 명목으로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말이 생각나 “사는 분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넸다. 가이드는 잠시 후 “옵션(선택관광) 외에 쇼핑몰 투어는 어차피 회사(여행사)가 챙기는 수익이기 때문에 눈치는 좀 보이지만 저는 괜찮다”고 답했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 옵션을 신청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 가이드와 고객 간 갈등이 빚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기사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런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각 여행사나 한국소비자원에도 관련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 즐거움을 찾으러 온 여행객과 생계 유지를 위해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가이드 사이의 ‘눈치 게임’, 누구의 잘못일까.

여행업계에 따르면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해외여행 시장에서 상당수 중소 여행사들은 항공비와 호텔 투숙비를 손해보면서까지 초저가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손해를 보고 판다는 뜻에서 ‘마이너스 관광’이라거나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뜻의 ‘제로 관광’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이런 상품들은 일단 고객을 많이 유치한 뒤 옵션이나 쇼핑 등으로 손해를 메우는 식으로 유지된다.

대만 여행에서 만난 가이드는 이를 ‘항공사-여행사-가이드’로 이어지는 일종의 ‘갑-을-병’ 구조라고 표현했다. 여행산업에서 ‘병’인 가이드들은 현장에서 고객과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하고, 여행에서 생기는 모든 불평·불만을 감내해야 한다고도 털어놨다. 그 말을 듣고 기자가 10여년 전 갔던 유럽 패키지 여행 당시 옵션을 하나도 신청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가이드가 지은 표정이 비로소 이해됐다.
김주영 사회부 기자
해외여행객이 3000만명에 육박하는 시대, 패키지 여행에 ‘불편한 여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으려면 업계와 여행객 모두 바뀌어야 한다. 여행객들은 ‘싼 게 비지떡’이란 말처럼 저렴하기만 한 여행은 없다는 걸 인지해야 하고, 여행사들은 가격 경쟁에 치중해 고객들에게 옵션, 쇼핑 강요 등으로 부담을 전가해선 안 된다. 관할 당국도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이뤄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주영 사회부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