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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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진상 클러버들 ‘범죄 자각’ 절실

평소 ‘법 없이도 살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모범소녀’ 이미지인 지인 A가 클럽에서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시비가 크게 붙을 뻔했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A가 친구들과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는데 “클럽 전혀 안 오게 생겼는데, 왜 놀러 왔냐”는 반말을 반복하며 따라붙는 한 ‘진상’ 클러버의 무례한 행동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반듯해 보인다는 취지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모범생 이미지’가 콤플렉스였던 A에겐 신경을 긁는 발언이었다. A는 집요하게 치근덕거리는 진상 클러버를 결국 거세게 밀치며 소리를 질렀고, 분위기는 양쪽 친구들까지 가세하면서 ‘일촉즉발’ 상황으로 험악해졌다는 게 지인의 전언이다.

클럽에 가면 일종의 ‘관례’쯤으로 여기고 도를 넘는 일탈 행위와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진상 클러버들로 인해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클러버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에 각종 ‘진상 행위’를 신고받는 게시판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사실 말이 ‘진상’이지 엄격히 따지면 명백한 ‘불법행위’가 대다수다. 강제로 신체접촉을 한다거나, 만취한 이에게 멱살이 잡혀 옷까지 찢긴다거나, 동의 없이 동영상이 찍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 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
김라윤 사회2부 기자

강제추행 등 불법을 클럽 내 관습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릇된 문화 탓에 클럽 직원들의 제지나 대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제보에 따르면 오히려 직원이 이를 부추기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직원이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을 룸으로 끌고 다니며 일명 ‘부킹’을 폭력적으로 강권해 손목에 멍까지 든 채로 화장실에 숨어있다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룸을 잡은 손님이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특정 고객과의 만남을 주선토록 강요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직원의 황당한 해명이었다고 한다.

클럽 ‘버닝썬 사태’가 불거지면서 클럽과 경찰 간 유착, 공공연한 마약 유통, 성폭력 묵인 등 각종 병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약범죄 수사가 클럽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일부 타락한 공권력과 유흥업소 간 불법 유착의 고리들을 끊어낼 계기가 마련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런 법적 제재만으로 클럽 내에서 이뤄지는 각종 불법행위가 상당 부분 근절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도하다.

‘즐거운 일탈’과 ‘위법’을 구분 못 하는 수많은 진상 클러버들의 자성이 뒤따르지 않는 한 한국 클럽문화 특유의 병폐는 사실상 해소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불특정 다수에게 강제적인 신체접촉을 일삼고, 상대방에게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강권한 후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불법’을 행했다기보다 ‘일종의 클럽문화’를 즐긴 것으로 착각하는 클러버들의 범죄 자각부터가 절실하다.

한 프랑스 친구가 한국을 방문해 강남 일대의 클럽을 갔다. 모르는 사람과 클럽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게 익숙한 개방적 문화권의 친구지만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소통’과 ‘불쾌한 스킨십’ 등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 어떤 나라의 클럽문화도 한국 클럽과 같지 않다는 평가에 자성하며 귀 기울여야 한다.

김라윤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