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평양의 맛’ … 이걸 다 감자로 만들었다고? [S스토리]

‘DMZ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 개성에서 전통 반상기 오찬을 드셔 보세요. 고려 왕국 왕족의 음식인 반상기 상차람은 다양한 고기와 두부, 야채, 김치, 신기한 도토리 젤리(도토리묵)로 채워집니다.’ ‘고려항공 버거. 이른바 ‘세계에서 최악의 기내식’이라지만, 여러분,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정말!’

1일 북한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여행사의 홈페이지. ‘평양 먹방(먹는 모습만 내보내는 방송처럼 여행 내내 먹는 데 집중하는 것)’ 콘텐츠가 화면을 채운다. ‘당신이 놓쳐선 안 될 북한 음식 10선’이라는 제목 아래 먹음직스러운 냉면 사진부터 석유를 붓는 다소 엽기적인 조개구이 사진까지. 여행사는 손짓한다. “북한이 요리로 유명하진 않지만, 그 장소를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음식 탐험이죠.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OOO투어와 함께 ‘은둔의 왕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가지 음식을 만나보세요!”

어쩌면 개방될지 모를 북한을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3대를 이은 은둔의 지도자가 국경 밖으로 나와 국제무대를 누비자 세계가 이목을 집중했다. 핵과 미사일로 도배됐던 북한 뉴스는 서서히 음식과 여행 등 문화영역까지 조심스레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호기심 반, 이질감 반. 외부의 눈에 비친 미지의 땅, 현대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평양에서 열린 요리경연… 정성에 감탄, 감자에 당황

금방 망울을 터트릴 듯 토실토실한 꽃봉오리 모양의 꿀떡, 한 알 떼어먹고 싶은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닮은 경단, 오징어 모양으로 배치된 순대. “디테일에 주의를 집중하기. 바로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는 열쇠다.”

지난달 12∼14일 북한 평양에 위치한 식당 평양면옥에서는 요리사 약 300명이 참여한 가운데 광명성절(김정일생일) 기념 요리경연대회가 열렸다. 대회를 취재한 AFP 기자는 대회 이틀째 날 이렇게 보도했다. 외신기자의 눈에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접시를 꾸미는 북한 요리사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외신기자의 감흥은 요리 대회를 구경하는 북한 주민들과도 공감대를 이뤘다. AFP는 “모여든 구경꾼 일부는 자신도 나중에 영감을 받으려는 듯 작품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댔다”고 묘사했다.
지난달 13일 ‘제9차 광명성절요리기술경연’에서 대회에 참가한 요리사들이 정성을 다해 감자가루 요리를 만드는 가운데 구경하는 주민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평양=AFP연합뉴스
그러나 외신기자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음식들이 모두 감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AFP는 “이 화려한 식당의 화강암 기둥 밖에서 북한은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평양은 이 초라한 감자를 주식으로 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탄성이 나오는(groaning) 테이블은 감자가루로 만든 것만 잔뜩이다. 피자와 만두, 국수, 심지어 초콜릿 케이크까지”라고 덧붙였다.
감자피자감자가루밀전.
감자가루 국수.
감자가루 경단.
AFP는 북한은 농업 수확량이 세계 평균을 훨씬 밑돌고 북한 인구는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상황에서 김정은의 답은 감자였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다양한 감자가루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널리 전파돼야 한다”고 말한 사실을 떠올렸다.
감자가루설기떡.
반면 대회를 주관한 북한 요리협회 관계자는 쌀뿐 아니라 감자가루도 주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자는 핵타르당 20t을 생산하고 쌀은 10t 미만을 생산한다”며 열정적으로 말하는 그는 AFP에 “여기서 요리축제를 보고 놀란 사람들은 우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제재를 당하거나 쌀이 주어지지 않아도 우리 삶은 영향받지 않는다. 우리는 자립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AFP는 “그는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나라의 식량 부족 우려를 일축했다”고 전했다.

◆평양에서 쇼핑하기

뉴욕타임스(NYT)매거진은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쇼핑하기. 그리고 북한 자본주의에서 다른 모험들’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피처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기고한 사람은 지난해 ‘평양에서 다시 봅시다(See You Again in Pyongyang): 김정은 북한으로의 여행’을 펴낸 미국인 청년 트레비스 제퍼슨.

NYT매거진에 따르면 평양 집집마다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놓여 전기를 공급한다. 젊은 커플들은 평양 보통강변을 산책하며 데이트를 한다. 대동강맥주바에는 광택이 나는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이 분위기를 낸다. 북한의 헬스클럽 부대시설은 호화롭다. 제퍼슨은 “사우나는 서울에서 본 찜질방보다 럭셔리하고 인공폭포가 있는 실내수영장이 있었다”고 했다.

NYT매거진이 더 주목한 것은 ‘돈주’와 신흥 중산층 증가, 성분제도의 몰락 조짐이었다. 돈주는 사금융업자, 신흥 중산층은 별볼일 없는 출신성분임에도 항구도시와 북·중 국경지대에서 무역업을 하며 부를 축적한 계층, 성분제도는 소위 북한식 신분제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김일성과 함께 항일운동을 한 집안 출신을 정점으로 출신성분에 따른 비공식 차별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김정은체제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

제퍼슨의 시선을 끈 것은 태양광패널 자체보다 태양광 패널을 강물에 띄워 장마당으로 이동시키는 광경이었다. 제퍼슨은 “북한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경제적 계층의 본거지가 되고 있다. 항구도시와 국경지역의 불법 무역이 번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부유층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유학, 여행 목적으로 북한을 5번 방문한 제퍼슨은 조선노동당의 핵·경제병진노선 폐기와 군부 격하를 놀랍게 봤다. 그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가 북한 개방을 낙관한다며 자신에게 한 언급을 소개했다.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김정은이 덩샤오핑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정은의 포부는 중국과 베트남처럼 세계경제에 개방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제퍼슨은 “문제는 시장경제가 가진 파괴력을 북한의 유일 정치체제가 견뎌낼 수 있는지이며, 그 핵심은 돈주”라고 소개했다. 이어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언급을 소개했다. “소련 몰락에 중추적 역할을 한 중상류층과 달리, 이들은 현상유지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 돈주는 북한 정부의 붕괴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돈주는 반체제계층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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