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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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비혼족을 위한 변명

K는 비혼주의자다. 6년 전 그녀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최근에 만났을 때도 K의 비혼 신념은 변치 않았다.

처음 K가 스스로를 비혼족으로 소개했을 때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은 거부감에 가까웠다. 그녀가 나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 또는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난해함이었다.
김범수 경제부 기자
그때만 해도 나는 결혼에 대해 침대에서 눈을 뜨면 배우자가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내놓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K는 남들과 똑같이 이성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 다른 점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뿐이다. 하지만 K와 나 모두 30대에 들어서면서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혼이 환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면서 나는 항상 근심을 달고 살았다. 당장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걱정이었다. 신혼부부가 함께 벌어도 연간 1억원 마련은 쉽지 않다. 서울 시내에 집을 사려면 단 한 푼을 쓰지 않아도 이론상 10년이 걸린다.

반면에 K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자신이 버는 것만큼 자신을 위해 썼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해 벌써부터 월급을 쪼개서 모을 줄도 알았다. 외로움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결혼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난 K의 모습은 어딘가 자유로움까지 느껴졌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결혼이란 남자의 권리를 반분해서 의무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혐오적인 발언이지만, 성별을 떠나면 뜻밖에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꼬장꼬장한 태도로 평생 혼자 살았던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있었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강간죄로 감옥에 있어야 할 카사노바 역시 독신이었다.

독신은 홀몸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사랑을 하지 않으며 험난한 세상 속에서 혼자 남겨진 모양새다.

반면에 비혼은 ‘혼자’라는 의미가 빠졌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는 것일 뿐, 다른 사람처럼 똑같이 사랑을 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오늘날 비혼족이 늘어난 이유는 육아에 따른 기회비용일 것이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좋은 부모 또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아실현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두 가지 모두 이루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육아의 책임을 요구받는 여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타인보다 더 일을 해야 인정받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녹록지 않다. 사회 부조리에서 오는 ‘유리천장’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 부조리에서 시작된 비혼주의는 향상된 여성인권의 측면도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해 더 이상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삶을 꾸릴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의 비혼주의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2030의 현실과 향상된 인권의 경계선상에 있는 셈이다.

이제는 K를 응원해주고 싶다. 비록 사회가 K에게 손가락질하더라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경쟁사회를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K의 모습은 때때로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비록 그녀가 누군가의 어머니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김범수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