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표격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존재를 몰랐다는 말이 아니다. 유 열사의 삶과 활약에 대해, 그 명성이나 상징성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아는 게 없었다는 뜻이다. 유 열사에 대해 익숙히 아는 것이라곤 ‘유관순 누나’ 다섯 글자 호칭뿐이었다. 독립투사에게 붙이기엔 지나치게 친근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형을 남성으로 두는 편협성이 담긴 그 호칭밖에는 잘 아는 것이 없었다. 3·1운동의 상징인 유 열사에 대한 지식수준이 이 정도였으니 영화에 나온 유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열사나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김향화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는 것이 없었다.
박지원 편집부 기자 |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낮은 인식 정도를 생각하면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떠오른다. 조국을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지만 전후(戰後) 존재가 지워진 여성들의 회고를 담은 책이다. 참전 사실이 알려지면 이웃 시선도 좋지 않고 결혼이 힘들어지니 비밀로 하라는 주변의 입단속이나, 여자가 해봤자 뭐 대단한 공을 세웠다고 나서냐는 사회의 시선이 이들을 침묵하게 또 잊혀지게 했다. 사안은 다르지만 여성의 사회참여를 폄하하고 역할을 한정지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수많은 개인을 감춰 왔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의 ‘여성지우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한국 사회 역시 그간 ‘독립운동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만큼 여성 독립운동가를 경시해 오지 않았던가.
다행인 것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조명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뤄진 유 열사 1등급 건국훈장 추가 서훈은 반가운 일이었다. 유 열사 외에도 기념식에서 서훈대상에 이름을 올린 여성은 전체 333명 중 75명으로 여느 때보다 많았다. 이처럼 여성 독립운동가를 적극 발굴하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려는 움직임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의로운 일을 한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명예와 대가가 돌아가는 것은 정의롭고 성숙한 사회의 기본이다.
3·1운동 이후 10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만큼 이제는 우리 사회가 ‘독립운동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낡은 팻말을 떼고 ‘독립운동은 여자의 얼굴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야 할 때다.
박지원 편집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