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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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

“좋은 정보는 무엇일까.”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출입하는 검찰청 등 법조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정보원들을 만나게 된다. 수년간 알고 지낸 한 사정 당국의 정보관 K를 최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건호 사회부 기자
나름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베테랑으로 소문난 그는 “지금까지 국가를 위해 해온 일에 회의감이 든다”며 “최근 좋은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과거 자신이 만든 보고서가 청와대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며 연신 자랑하던 K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 국방부,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사정 당국에는 각자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이를 정책결정권자에게 보고하는 정보관들이 있다. 이들이 다루는 정보에는 인사권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평 수집에서부터 관련 국회 상임위의 동향, 굳게 통제된 공간에 숨겨져 있던 첩보도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눈에 띄게 변화한 것 중 하나가 이러한 정보활동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과거 연이은 법조비리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검찰도 개혁대상이 됐는데,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7년 7월 검찰 정보의 선두에 있던 대검찰청 범죄정보과를 없애는 초강수를 뒀다. 검찰 내·외부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부터 첩보 생성 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문 총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모든 사정 당국이 정보활동에서 검찰과 같이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의 경우 불법 댓글 공작 등 정보국의 폐해가 심하다고 판단한 경찰개혁위원회가 정보국 폐지를 추진했지만 청와대가 폐지 반대 의사를 밝히며 아직도 정보국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국세청도, 국방부도 여전히 본연의 업무에 맞게끔 다양한 조직을 운영하며 정보활동을 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국민이 이들의 정보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보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했지만, 상당 부분 나쁜 정보로 활용돼 치명적 독이 됐던 탓이다.

모든 정보활동을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사당국이 진행해온 적폐청산 수사에서부터 수많은 대기업 관련 비리들이 내부 제보자와 정보를 다루는 정보관들에 의해 첩보로 생성됐고, 국정농단과 탄핵의 시발점을 제공했던 ‘정윤회 문건’ 역시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문건이었다.

결국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의 차이는 그 정보를 생성하는 목적과 방법에 있다. 사법농단 수사에서 드러났듯 법봉을 들어야 할 판사들이 박근혜 정부에 충성하기 위해 법을 어겨가며 만든 ‘나쁜 정보’는 결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법원도 권력에 휘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서초동에서 ‘내일의 보고서’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수많은 K들에게 말하고 싶다. VIP가 아닌, 국민을 위한 보고서를 쓰시길.

김건호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