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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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 또 다시 삶이 피고 있었다

재일교포 3세 윤미아 감독 ‘봄은 온다’

2011년 3월11일. 규모 9.0의 지진과 쓰나미(지진 해일)가 일본 동북부 지역을 덮쳤다. 1만9500여명이 숨지고 2500여명이 실종됐다. 12만7700여가구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봄은 온다’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재일 교포 3세인 윤미아 감독의 데뷔작. 윤 감독은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피해 지역에서 100여명을 만나 이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영화 ‘봄은 온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는 기억과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있었다. 세 아이와 집을 잃은 부부는 집터에 마을 사랑방을 운영한다. 원인 제공자인 전력 회사 직원들을 용서한 사람도 있다.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공범”이라고 말한다. 미야기(宮城)현의 한 호텔은 일명 ‘재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운행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있다. 후쿠시마(福島)현에 사는 농부는 “농부가 농사를 짓는 건 당연하다”며 피난을 가지 않고 남아 벼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벼는 땅에 돌려보냈다. 한 어부는 “쓰나미가 자연 순환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의 이기심에 오염된 바다의 수질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영화의 메시지는 딸을 홀로 키우는 한 여성의 사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담담히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하면 괴롭지만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 되죠.”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한국 사회에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원제는 ‘일양내복(一陽來復)’.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있다는 의미다. 꽃샘추위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춘래불사춘이라지만 봄은 이미 와 있다.

 

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