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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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버닝썬 사태와 수사권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숙원이다. 경찰은 검찰이 독점한 수사권과 기소권 중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가져오려고 기를 쓰고 있다. 문재인정부 공약 1호가 검찰개혁이라 이런 호기가 다시는 없다고 보고 조직 전체가 총력전을 벌여왔다. 국민의 70%가 수사권 조정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힘을 보탰다. 수사권 조정의 키를 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이 6월 말까지다. 내년에 총선이 있어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약이 없다. 그러다 ‘버닝썬 사태’라는 최대 악재가 터졌다.

버닝썬 사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있다. 강남 경찰이 버닝썬 클럽에서 상납받으며 봐줬고, 가수 정준영의 몰카 수사 때는 경찰이 디지털포렌식 업체에 “복원 불가로 처리해달라”는 어이없는 요청을 한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 승리의 단체채팅방에선 “경찰총장이 걱정 말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와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경찰은 정준영과 승리의 스마트폰에서 무슨 악재가 더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간 수사권 조정의 발목을 잡은 논리가 ‘경찰을 믿을 수 있나’였다.

제보자 의뢰인인 방정현 변호사는 버닝썬 사태를 ‘한국형 마피아’ 사건이라고 했다. 제보 내용에 경찰의 유착·비호 의혹이 많아 경찰 수사가 부적절하다고 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권익위는 어제 경찰이 아닌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법무장관도 “경찰이 연루됐다는 보도도 있고 해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민갑룡 경찰청장을 불러 뒷북·부실 수사를 추궁하고 “이런 지경에서 자치경찰제로의 전환이 온당하냐”며 견제구를 날렸다.

수사권 조정을 무산시킬 기회만 엿보던 검찰도 행동에 나섰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애써 만든 자치경찰제안에 반기를 들었다. 검찰총장 등 간부들이 사표도 불사하는 분위기다. 경찰에 우호적인 박영선 사개특위 위원장이 물러나고, 법조인 출신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임자가 됐다. 갈 길은 먼데 날이 저무는 형국이다. 경찰 내부에선 수사권 조정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경찰청장은 해법을 찾느라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