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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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늑대에 먹힐 ‘외톨이 들소’

뿌리째 흔들리는 ‘동맹안보’ 71년 / 미국에는 어깃장, 일본은 적대시 / 동맹과 우방은 대체 어디에 있나 / ‘갈라파고스 고립’은 재앙 부를 것

동주공제, 합종연횡, 이이제이, 원교근공…. 수천 년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하는 책사의 머릿속을 채웠을 말이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하나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 의식. 독불장군은 없다. 외톨이가 되면? 운명은 다한다. 살벌한 약육강식의 생존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 세계와 똑같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무리에서 떨어진 들소는 늑대의 먹이가 되고 만다.

인공지능(AI) 시대라고 다를까. 하나 다르지 않다.

강호원 논설위원

동맹, 우방, 블록…. 힘을 모아 적대 세력에 대항하는 의미를 지닌 이런 말은 아직도 국제정치를 지배한다. 밑바탕에는 생존을 향한 힘의 논리가 깔려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런 말쯤은 쓰레기통에 내던지다시피 했다. 부동산 사업자 출신답다. 동맹도 돈으로 따진다. 밑바닥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마다 “핵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는 북한과도 거래를 시도했다. 날선 비판을 쏟아내는 미국의 주류 언론들. 그것은 ‘이단적인’ 생각이 생존의 룰인 동맹·우방·블록을 파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외톨이 들소 운명을 걱정하는 소리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인지 모른다. 왜? 북한은 ‘핵 없이, 동맹 없이 부실더미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테니. 북한을 지탱하는 지렛대는 사회주의 동맹 의식이다. 동맹을 동맹으로 여기지 않는 트럼프. 그를 믿을 턱이 있을까.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는 말, “트럼프도 알았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우스운 소리다.

트럼프만 동맹의 가치를 내던진 걸까. 우리도 다르지 않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말했다. “그의 내정은 미국과 관계없이 한반도 정세를 밀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런 말을 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 “영변 핵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 진행 과정에서 되돌릴 수 없는 단계”라고. 이를 반길 사람은? 딱 한 사람 있다. 북한 김정은. 트럼프조차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판에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해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실질적인 북핵 폐기 방도라도 갖고 있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무엇을 믿고 국민의 혈세를 북한에 쏟아붓고 보겠다는 것인가.

돌아오는 시선이 싸늘하다. 미 의회에서는 “한국이 달을 향해 총을 쏘는 외교를 한다”고 냉소한다. “한국이 제재 공조를 허물려 한다”는 불만도 쏟아진다고 한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노”라고 못 박은 미국, “한국 정부가 탈북민의 북한 비판을 막고 있다”고 비판한 미 인권보고서, 유엔 제재를 위반한 ‘김정은 벤츠’에 오른 문 대통령 사진을 실은 유엔 안보리 연례보고서…. 모두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다. 블룸버그가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으로 제목을 뽑은 것도 맥락이 같다.

한·미동맹 71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국만 그럴까. 일본과의 관계도 파경으로 치닫는다. 우방? 하루아침에 적은 북한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친일 잔재”를 외치며 ‘관제 민족주의’(최장집 교수)를 부추기는 판이니, 우방이라는 말을 듣기는 글러 먹었다.

동맹과 우방이 없어지는 대한민국.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에는 대접을 받을까. 중국은 무시로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다. 북한은 빚쟁이 대하듯 한다. 적대적인 적화통일 노선은 청산했을까. 청산했다면 왜 핵을 부둥켜안고 방공훈련을 하는가.

대한민국은 동맹도, 우방도 없는 ‘외톨이 들소’로 변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외교가 따로 없다. 이런 것을 국가비전으로 생각했던 걸까. 주변 늑대는 언제 이빨을 드러낼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무리에서 떨어진 남한은 곧 먹잇감으로 변할 테니.”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