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번지는 덫, 오늘도 누군가… 파멸의 늪에 빠진다 [심층기획]

Scared boy behind glass door showing one hand
마약은 인간의 몸과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마약은 뇌 속의 쾌락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시켜 환각에 빠지게 한다. 한 번이라도 마약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환각을 찾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투약자의 도파민 수용체는 파괴된다. 마약 없이는 기쁨이나 행복, 즐거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마약 투약을 중단하지 못하고 본능에 따르게 되면서 마약에 중독된다. 술이나 담배와 달리 마약을 접하는 순간 인간은 노동기능을 상실한다. 일을 할 수 없는 투약자는 수입을 잃게 되고 약물 구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일으켜 피해자를 만든다. 환각상태에 빠진 중독자가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마약으로 심신이 파괴된 이들을 위해 사회적 비용도 투입돼야 한다. 마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은 서서히 국내에 퍼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마약의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이 약하고 단속이 강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2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사법당국이 빼앗은 마약은 2014년 162.2㎏에서 지난해 517.2㎏으로 급증했다. 국내에 몰래 반입하려다 적발된 외국산 마약 역시 2014년 50.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98.3㎏으로 6배 가까이 많아졌다. 마약사범은 2011년 9174명에서 지난해 1만2613명으로 37.5% 늘어났다.

대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약에 오염되지 않은 국가라는 평가 때문에 그동안 마약의 유통경로 정도로만 여겨졌다”며 “최근에는 마약 소비 수요가 발생하고 단속도 강화돼 압수되는 규모와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요 마약 생산국 등 일부 국가에서 출발한 비행기나 선박이 외국에 도착하면 삼엄한 검문이 이뤄진다. 반면 한국에서 온 교통편에 대해서는 비교적 단속이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다.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마약을 소지하다 적발되면 최고 사형을 받을 수 있지만 마약사범에 대한 국내 처벌은 약한 편이어서 밀수범들은 한국을 선호했다. 마약을 들고 들어가기 낯설지 않은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약값이 비싸게 책정된 것도 외국의 마약 유입을 촉진하는 이유로 꼽힌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필로폰 1g의 국내 거래가가 285달러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209달러 △싱가포르 117달러 △중국 59달러 △홍콩 46달러 등보다 비싸다. 가격이 높게 형성됐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의미다.

 

검찰 관계자는 “마약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입국이 늘었고 연예인들의 투약으로 인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마약을 권유하는 클럽문화 등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마약류는 크게 마약(아편·코카인·모르핀·헤로인·메타돈·펜타닐 등)과 향정신성의약품(LSD·고메오·암페타민·메스암페타민·MDMA·케타민·프로포폴·졸피뎀·메틸페니데이트·GHB 등), 대마 및 임시마약(랏슈·환각버섯류 등)으로 나뉜다.

헤로인은 중독성이 가장 강한 마약으로 분류된다. 록밴드 ‘너바나’의 코트 코베인이 헤로인 중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필로폰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 중 70%를 차지한다.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시중에서 구한 감기약을 원료로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로 온라인과 약물 웹사이트, 주기율표 등을 보고 메스암페타민을 추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뽕 혹은 데이트 약물이라고 불리는 GHB는 클럽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클럽 버닝썬에서 GHB가 사용됐다는 증언 등을 토대로 유통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GHB는 화학성분이 체내에 남지 않고 소변으로 배출되는 특성이 강해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은 마약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290명의 마약수사관과 60억원의 예산으로 직접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역시 250명 규모의 마약단속반을 운영해 마약근절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법당국 관계자는 “정수기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물속에 녹은 3㎏의 마약이 발견되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국내에 마약이 유입되는 상황”이라며 “미 수사당국에 우리나라 수사관 3명을 파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약 관련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입수해 단속하고 있지만 인력 등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양귀비 개화 시기를 맞아 관련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적발되지 않은 암수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집중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中·태국 등 아시아 국가 최고 사형… 한국은 5년 이하 징역 ‘솜방망이’

 

버닝썬 등 강남의 대형 클럽에서 마약 관련 범죄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약류에 대한 엄격한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마약 시장이 태동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외국보다 낮은 국내 마약 관련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29일 한국마약퇴치본부에 따르면 중국이나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사법당국은 마약 관련 범죄에 대해 최대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강력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마약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경우 형법 347조에 따라 50g 이상의 마약을 제조하거나 판매했을 때 15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고, 1㎏ 이상의 마약을 유통하다 적발되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한다. 중국 사법당국은 올해 1월 마약 밀매 혐의를 받는 캐나다인 로버트 로이드 셸렌베르크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2009년 영국인 마약범과 2014년 한국인 마약범 3명 등에 대한 사형도 집행할 정도로 엄격하다. 싱가포르에서 헤로인 15g이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250g 이상을 밀매할 경우 사형을 받게 된다. 태국은 메스암페타민이나 헤로인 등 20g 이상의 마약을 수출입하다 적발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한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에서는 마약사범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마약류를 복용하거나 투약하는 행위는 물론 허가 없이 거래하거나 소지하고 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처벌도 약한 편이다. 최근 3년간 마약류범 사법 처리 현황을 보면 총 4만3599건 중 재판 없이 처분이 내려진 구약식·기소유예·기소중지·무혐의 비율은 35.6%(1만5518건)로 나타났다. 마약에 빠진 중독자를 처벌의 대상이 아닌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는 시선도 강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은 “마약사범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마약사범을 양산하고 있다”며 “마약이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련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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