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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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해외서도 소문난 한국인 ‘노쇼’

“이 식당은 한국인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약대행 앱을 통해 일본 삿포로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한 초밥집 예약을 시도하다가 돌아온 청천벽력 같은 답변이었다. 평소 여행을 할 때 ‘보는 것’만큼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는 유명한 현지식당 한두 곳 정도는 늘 예약을 하고 방문한다. 특히 미식의 도시로 알려진 홋카이도는 유명한 음식점들의 대기시간이 기본 1∼2시간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넉넉지 못한 휴가를 음식점 앞에서 줄 서는 시간으로 허비하지 않기 위해 예약은 필수였다. 그런데 예약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예약을 거절당했다니 이게 무슨 차별인가 싶었다.

남혜정 사회부 기자

문제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노쇼’(예약부도) 탓이었다. 알고 봤더니 내가 예약을 시도했던 한 초밥 식당은 예약제로 운영하는 곳인데 예약한 여행객들이 하루에만 2∼3건의 노쇼를 하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는 안 받거나 일본사람이 아닌 경우는 예약을 거절한다고 한다.

일본 여행 카페에서도 기자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한 게시글에는 “지난해 일본 가족여행에는 예약대행 앱을 통해 가고 싶은 식당을 예약할 수 있어서 대기시간 없이 맛있게 식사하고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며 “그런데 이번 여행 때 같은 식당에 문의했더니 ‘노쇼 때문에 더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호텔 컨시어지(안내 및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일부 식당은 예약을 안 받아 주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노쇼는 여전히 국내에서도 골칫거리다. 기자가 단골로 찾아가는 영등포구의 한 초밥집 사장님도 “점심, 저녁 각각 6∼7팀 정도 예약을 잡으면 하루 평균 2∼3팀은 펑크를 내더라”며 “예약에 맞춰 재료를 준비했다가 손해 보기 일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대경제원구원에 따르면 식당, 공연장 등 주요 업종의 노쇼로 인한 손해액이 연간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해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인 관광객 수가 많은 태국에서도 한국인은 ‘띵똥’(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식당, 호텔, 공연장 등에서 가리지 않고 노쇼 행위를 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노쇼 당사자들은 ‘나 하나 안 간다고 어떻게 되겠나’라는 가벼운 마음이었을 거다. 적어도 일정이 변경되면 몇 시간 전이라도 ‘취소한다’는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이들 덕분에 약속을 잘 지키는 여행객들마저도 대기 줄이 길더라도 무한정 기다리거나 예약 자체에 돈을 지불하는 유료 대행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등 ‘비싼 값’을 치르게 됐다.

일본에 사는 친구 도움을 받아 노쇼 때문에 거절당했던 식당 예약에 성공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사장님은 친절했고 음식도 맛있었다. 문득 ‘얼마나 자주 노쇼가 반복됐으면 한국인 예약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더는 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국격을 갉아먹는 행동들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남혜정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