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불황·고물가·규제 3중고… 한국 기업·교민 줄줄이 ‘보따리’ [세계는 지금]

“차가 안 팔리는데 어떻게 하겠나. 방법이 없지….” 한 현대차 협력사 관계자는 “4, 5월이 되면 협력사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보통 4개월 단위로 납품비가 결제되는데, 현대차는 올 초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봄이 되면 줄어든 물량에 대한 충격이 본격화한다는 의미다. 그나마 1차 협력사는 대비를 해왔지만, 2, 3차 협력사는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다. 한 교민 사업가는 “2, 3차 협력사 중 자금난이 심각한 곳이 많다”고 전했다.

◆현대차 1공장 순이 가보니… 모두들 “잘 모른다”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北京) 동북쪽 순이(順義)구의 베이징 현대차 1공장을 찾았다. 현대자동차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지난달 6일 “1공장 가동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였지만 차량과 직원들은 공장을 드나들며 분주했다. 공장 한쪽에는 생산을 마친 차량의 성능을 시험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4월 말 공장 가동중단 소식이 들리면서 안팎으로 집중된 관심 때문이지 직원 모두 회사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문 방호원도 손을 들어 제지하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공장 가동률은 40%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가동률을 더 낮춰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세금 문제 등으로 베이징 정부가 생산을 독촉해 과잉생산이 계속되고 있다. 1공장 인근 식당가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아예 폐업했는지, 몇 군데 식당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긴 곳도 있었다. 인근 한 식당 종업원에게 “손님이 많이 오느냐”고 묻자, “손님이 오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 말해줬다. 2002년 가동을 시작한 이곳 1공장은 현대차의 ‘중국 1호 공장’으로 상징성이 크다. 가동중단이 현실화하면 교민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불황·물가·중국 내 규제 3각 파고에 한국 기업 철수

중국을 떠나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이 줄을 잇고 있다. 불황과 물가 상승, 중국 내 규제 등 3각 파고를 견디지 못해 잇달아 중국을 등지고 있다. “기업이 철수하면서 한국인이 줄고, 그러면 한국인 식당 등 요식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또다시 한국인 업소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중 한국 대사관 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베이징 거주 한국 교민은 6만3000명 수준으로 추정됐다. 한때는 10만명가량 있었다. 현재 중국 공안에서 한국 교민 수를 파악 중인데, 그 수는 훨씬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3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체계) 갈등 이후 거의 반 토막 수준이 된 것이다. 한 대사관 관계자는 “체감 교민 수는 2017년 사드 이전과 이후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곳 베이징 한국 국제학교 학생 수도 사드 전후로 20% 정도 감소했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한때는 학생이 1300명 정도 있었다. 사드 직전인 2016년쯤에는 1000명 정도였다가 2018년 말에는 8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인이 줄어드는 것은 잇따른 기업 철수와 관련이 깊다. 기업 철수에 교민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롯데그룹은 이미 중국 내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공장 4곳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집중 타깃이 되면서 100여곳에 이르는 중국 내 롯데마트를 철수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아 상징성이 컸던 베이징 한인타운의 왕징(望京)지점도 지금은 중국계 마트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CJ그룹도 실적 악화로 중국 외식사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CJ는 중국에서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비비고, 빕스 등 4개 외식 브랜드 매장을 운영 중이다. CJ 그룹 관계자는 “일부 조정일 뿐 외식사업 철수는 아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상황도 엄중하다. 현대차의 베이징 1공장 가동중단 결정에 이어 기아자동차도 장쑤(江蘇)성 옌청(鹽城) 1공장의 가동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다 보니, 기업을 상대하는 식당 등 요식업체도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에만 문을 닫은 유명 한국 음식점이 3∼4곳에 이른다. 한국인 손님이 줄고, 임차료와 물가·임금 상승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인근 한 대형 한국 음식점도 최근 건물주의 높은 임대료 요구에 결국 문을 닫았다.

실제로 7, 8년 전에 비해 임대료가 거의 5, 6배 정도 상승했다. 7, 8년 전 2000위안(약 33만원) 정도였던 왕징 내 사무실 임대료가 현재는 8000위안(약 135만원)에서 많게는 1만위안(170만원)을 훌쩍 넘은 곳도 많다. 왕징 한국 음식점 상가였던 한국성(韓國城)은 한때 한국어 간판으로 불야성을 이뤘지만, 이제는 중국어 간판이 더 많아졌다. ‘한국성’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사드 갈등 이후 이곳은 ‘미식가(美食街)’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유명한 한국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중국인을 비롯해 외국인 바이어들을 접대할 때 소개할 만한 음식점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엄격한 비자 규정에 “희망 없으니 떠난다”

중국 내 엄격해진 비자 발급 규정도 교민에게는 골칫거리다. 2∼3년 전부터 만 60세 이상 외국인에게는 ‘점수제’로 비자 발급 규정이 변경됐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한 교민은 “만 60세 이상 교민에게는 점수제가 적용되는데, 60점 이상 넘어야 비자 재발급이 가능하다”며 “항목을 보면 ‘세계 500대 기업 경력’ 5점, ‘대학’ 15점, ‘석사’ 15점 등으로 항목마다 합산하는데 실제로 60점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점수제에 적용을 받지 않으려면 중국 현지 투자법인 자본금이 중국 돈으로 100만위안(약 1억6000만원) 이상, 최소 5명 이상 중국인 고용직원에게 사회고용보험을 들어야 한다.

중국 한국인회의 한 관계자는 “중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안 되면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라며 “수십년 살면서 기업도 일으키고 사회 발전에도 공헌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내쳐진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베이징 한인회 박용희 회장은 “이곳에서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그러니 중국을 떠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씁쓸해했다.

 

◆한국 기업 철수 사드 보복 탓?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실적 악화로 잇따라 철수하는 것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파장으로만 보기 힘들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 기업 쇄도가 절정을 이룬 2000년대 초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차에 사드가 그 속도를 가속했다는 지적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중국 내 기업환경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중국 내 달라진 기업환경 변화를 기업들이 융통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전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생산기지 역할이 컸다면, 이제는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변모했다. 중국 경제 발전에 따른 인건비 등 생산단가 상승과 노동법 강화 등도 중국 내 달라진 기업환경 변화로 꼽힌다.

 

이는 중국 토종 기업의 경쟁력 상승과도 관계가 깊다. 제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자상거래를 통한 유통혁명이 진행되면서 외자 기업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제조 2025’, 공급 측 개혁 등으로 중국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왔다. 중국 기업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부품도 점차 중국산화하고 있다. 특히 유통 분야는 인터넷을 통한 결제수단 간편화 등 전자상거래의 급속한 발달로 이미 중국 내수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

 

중국에서 철수를 고민하는 것은 비단 한국 기업뿐만이 아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2017년 중국 내 일본기업 599개사에 대한 조사에서 43개 기업이 “1, 2년 내 공장 축소 또는 이전 계획이 있다”고 했고, 40개 기업은 “이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주중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가 최근 2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20개 가까운 기업이 중국에 있는 생산기지를 중국 밖으로 이미 옮겼거나 옮길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답했다.

 

전통 제조업에 기반해 중국을 생산기지로 여기는 기업은 이전이 불가피하고, 13억 인구의 거대 중국 시장을 노리는 기업은 여전히 중국은 ‘기회의 땅’이 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한 매체는 일본 기업 엡손이 2021년 선전(深?) 손목시계 제조공장을 폐쇄한다는 사실을 거론하고 “전통 제조 기업이 떠난 자리를 첨단 기업이 채우고 있다”며 중국 내 산업구조 재편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이미 기술력이 중국과 거의 차이가 없다. 전통 제조업은 성공하기 힘들다”며 “글로벌 가치 사슬 속에서 기업들은 중국 시장 변화를 살펴보면서 재투자, 축소, 이전, 철수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이징=글·사진 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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