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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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외교와 로비

로비스트 박동선이 미국 정치인들에게 돈을 댔다가 불거진 ‘코리아게이트’로 코너에 몰렸던 한국은 한동안 미국에서 로비를 접었다. 외교를 통한 협상력 발휘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미 의회에서 일본과 정면 충돌했다. 2007년 2월15일 하원 외교위 아태환경소위가 처음 위안부 청문회를 개최했을 때다. 일본은 청문회를 저지하기 위해 외교 역량과 로비력을 총동원했다. 한국도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간 네덜란드 출신 할머니까지 육성으로 일본군에 강제 납치돼 위안부로 시달린 사실을 증언했다. 한국 로비의 승리로 기록됐다.

외교와 로비는 한 끗 차이다. 권력의 위임을 받은 외교관이 협상에 나서는 것을 외교라 하고 민간인이 비공식적으로 중재하는 것을 로비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둘 다 합법이다. 워싱턴DC 북쪽 K스트리트에는 로비회사들이 몰려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미 행정부와 의회를 움직이려고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국에서 로비는 불법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로비스트를 활용하지 않다가 손해를 보기도 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지난달 13일 제재 위반 사례를 열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포함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18일 방북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는데 이때 탔던 벤츠 리무진이 유엔 제재 위반 물품이었던 것.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 때도 번호판 없는 이 차량을 실어갔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사진을 빼기 위해 외교 노력을 폈지만 실패했다. 문 대통령 사진이 실리면서 마치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처럼 비쳤다. 사진 삭제 압력을 넣었다고 알려져 이중으로 망신을 당했다.

2017년 2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로 체포된 여성들이 모두 풀려나게 됐다. 인도네시아 여성에 이어 베트남 여성도 곧 석방된다. 인도네시아가 외교적 로비 덕분이라고 하자 베트남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매우 가깝다. 북한의 로비력 때문이 아닐까. 이들이 풀려나면서 북한이 개입한 혐의는 사라지고 영구미제 사건이 돼 버렸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