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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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사랑’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2008년 박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땅을 사랑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농사를 짓지 않는 박 후보자가 1999년 경기 김포시의 논 3817㎡를 매입한 것을 두고 인사청문위원들이 투기 의혹을 지적하자 이같이 답한 것이다. 위장전입과 농업경영계획서 허위 작성 등 땅 매입과 관련한 위법성이 줄줄이 드러나자 박 후보자는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땅을 사랑한다”던 박 후보자는 땅 때문에 장관이 되진 못했지만 투자에는 성공했다. 박 후보자의 땅은 2004년 김포신도시 개발계획에 포함되면서 가격이 20배가량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사랑은 11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자진 사퇴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똘똘한 3채’를 가진 재테크 달인이었다. 흙수저 집안에서 자란 최 후보자는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동안 부동산 투자로 20억원이 넘는 재산을 일궜다. 2003년 3억1000만원에 산 잠실주공 1단지 아파트는 재개발 후 13억원이 넘는 알짜배기 아파트가 됐다. 최 후보자는 주미 대사관에 3년간 파견근무를 가면서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그 돈을 종잣돈 삼아 투자해 성공했다.

땅을, 부동산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만약 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때 솔직히 투기를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내 자식들은 나처럼 고생하면서 내 집을 마련하지 않았으면 했다.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자식들 결혼할 때 집 한 채 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좋은 투자처를 찾아 집을 샀다.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서 먼저 모범을 보여 사는 집 말고는 처분하겠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책임져야 할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다주택’ 보유자이지만 적어도 진솔함은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진짜 죄는 ‘내로남불’이다.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파셨으면 합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해 8·2 대책을 내놓으면서 강조한 일성(一聲)은 결국 허언으로 드러났다. 최 후보자는 투기 의혹에 대해 청문회 내내 “실거주 목적으로 샀다”고 해명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재개발을 앞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상가건물을 매입했다가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여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허언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결국 최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김 전 대변인의 사퇴를 끌어냈다.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사랑’에 분노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 기준으로 평균 소득 가정이 서울의 아파트(8억4502만원·중위 가격)를 사려면 13.4년치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최 후보자처럼 흙수저로 시작해 스스로 수십억원의 자산을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김 전 대변인처럼 재개발 수익을 노리고 영혼을 끌어 모은 베팅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 검증 이후 부동산 가격 애플리케이션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낡은 동네를 지나가면 옛 정취보다는 ‘재개발이 가능할까’, ‘건물은 얼마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변하지 않는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사랑을 보면서 ‘어쨌든 답은 부동산’이라는 씁쓸한 결론을 내려본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