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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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DMZ 지뢰와 주머니쥐

지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277년 중국 송나라 때였다. 몽골 기마병을 막기 위해 지뢰를 사용했다. 지뢰는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에 전해져 공성전에 쓰였다. 현대에 이르러 대인, 대전차 용도로 개발된 지뢰는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로 지탄받는다. 전쟁은 평화협정을 맺으면 끝나지만, ‘지뢰전’의 끝은 가늠할 수 없다. 전 세계 곳곳에 깔린 지뢰는 1억1000만발 이상으로 추정된다. 해마다 1만여명이 지뢰 폭발로 죽거나 다친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지뢰 위험지역이다. 비무장지대(DMZ)에만 약 200만발이 묻혀 있다. 휴전 이후 지뢰로 죽거나 다친 군인·민간인이 3000∼4000명에 달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재, 평화둘레길 조성 등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도 지뢰 제거는 시급한 일이다. 후방 60여곳에도 1만발가량 묻혀 있다. 심지어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 아직 지뢰가 남아 있다. 군부대 방어를 위해 매설한 것인데 그 후 제거 작업을 하고도 아직 10여발은 찾지 못했다.

아프리카산 주머니쥐는 지뢰 탐지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주머니쥐는 먹이를 땅속에 파묻어 뒀다가 나중에 냄새를 맡아 다시 찾아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 점을 활용해 화약 냄새로 훈련한 뒤 지뢰 탐지에 투입하면 놀라운 활약을 펼친다. 사람이 금속탐지기로 25시간 걸리는 일을 20분 만에 해낼 정도다. 지뢰 폭발 압력은 5㎏인데, 주머니쥐의 몸무게는 1.5㎏에 불과해 지뢰가 폭발할 일도 없다. 모잠비크, 탄자니아, 캄보디아, 앙골라, 짐바브웨, 콜롬비아,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9개국이 주머니쥐를 이용해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

최근 벨기에의 민간단체 아포포(APOPO)가 지뢰 제거 작업에 주머니쥐를 투입하자고 우리나라에 제안했다. 강원도 철원군 ‘궁예 도읍지’ 일대의 매설지뢰 제거에 주머니쥐 10마리를 시험적으로 투입해 보자는 것이다. DMZ 일대 지뢰를 모두 제거하려면 전방 사단의 11개 공병대대를 모두 투입한다 해도 200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주머니쥐를 투입하면 15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이다. 군 당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길 바란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