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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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적의 자전거

기적의 발원지는 7살 영국 소년이었다. 2010년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사람들이 숨지자 런던에 사는 찰리 심프슨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심프슨은 자신의 기부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아이티 이재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공원을 다섯 바퀴 돌게요. 기부를 해주세요.” 하루 만에 9000만원이 넘는 성금이 답지했다. 소년이 목표한 돈의 100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이번엔 베트남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북부 산골에 사는 13세 소년 찌엔은 지난달 25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180㎞쯤 떨어진 수도 하노이의 어린이병원에 생후 2개월 된 동생이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하노이의 위치도 몰랐던 소년은 국도 1호선에서 행인들에게 방향을 물어가며 페달을 밟았다. 마실 물도 없이 쉼 없이 달리던 찌엔은 도중에 탈진해 길옆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한 버스 승객이 발견해 부모와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소년의 애잔한 소식은 소셜미디어(SNS)를 후끈 달구었고, 한 시민은 그의 자전거를 페이스북으로 경매에 부쳤다. 고장 난 자전거는 1억300만동(약 505만원)에 낙찰됐다. 소년에게 새 자전거를 선물한 사람도 있었다.

예전 뉴질랜드에선 싸구려 빨래집게 하나가 경매 사이트를 통해 12만원에 팔린 일이 있었다. “플라스틱 빨래집게를 팔아 딸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는 간절한 모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화답한 것이다. 어머니는 “빨래집게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주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머잖아 인간이 AI(인공지능)에 밀려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AI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고 놀라운 연산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기계는 인간의 적수가 될 수 없다. 기계에는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기계가 효율성과 기능성에서 인간을 압도할지라도 기부, 연민, 배려, 모성애 등은 절대 흉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기계의 인간화가 아니라 인간의 기계화이다. 인간이 기계를 닮아가지 않도록 각자 ‘인간적 품성’을 닦을 일이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