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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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모성애

‘아버지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모성애의 위대함을 표현한 말이다. 1863년 영국 웨일스에서 한 여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다 얼어죽었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한 농부가 이상한 모양의 눈더미 속에서 여인의 겉옷에 싸여 살아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여인은 아기 체온이 떨어질세라 옷을 벗어 감쌌고 끝내 숨을 거둔 것이다.

모성애로 살아난 이 아기는 62년 후 영국의 34대 총리가 되었다. 그가 바로 위대한 정치가로 손꼽히는 로이드 조지이다. 조지 총리는 학창 시절 나태해질 때마다 추위에 떨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총리까지 올랐다. “아무리 추워도 따듯한 옷을 입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묻어난다.

모성애가 일으키는 기적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 8.0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다. 자식을 지키려고 양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무너지는 건물을 지탱하다 숨진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세상을 적셨다. 24시간 동안 몇십 t의 흙더미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인간 지붕을 만들어 젖먹이 딸을 살려냈다. 아기를 덮은 담요 속 휴대전화에는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나면 꼭 기억해다오. 엄마가 널 사랑했단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최근 척수성근위축증을 앓는 체중 20㎏의 일본 여성이 기적적으로 출산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척수성근위축증은 근력이 저하되는 진행성 난치병이다. 등뼈가 휘어 있어 하루 24시간 도우미가 옆에 있어야 한다. 의료진은 “엄마와 태아 모두 사망할 수 있다”며 중절수술을 권유했지만 그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다”며 뜻을 꺾지 않아 임신 27주째에 제왕절개 수술이 진행됐다. 마침내 체중 776g, 신장 32.5㎝의 남자 아기가 탄생했고 퇴원무렵에는 체중이 3.3㎏으로 불었다. 자식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이가 세상의 어머니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유대 격언이 나온 이유가 아닐까.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