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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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소방관 국가직 전환

지난 5일 새벽 속초의 한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에서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사진은 큰 감동을 줬다. 강풍을 타고 충전소 50m 앞까지 닥친 거센 불길을 소방관 5명이 밤새 사투를 벌여 막았다. LPG충전소는 작은 불씨에도 폭발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충전소 뒤에는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있다. 소방관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전국에서 800대가 넘는 소방차들이 어둠을 뚫고 강원도를 향해 질주하는 장면은 국민에게 안도감을 줬다.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한직업’이다. 매년 평균 6명가량의 순직자와 3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2017년 4월 배우 정우성·김혜수·박보검, 가수 이승환 등이 소화기 분말에 쓰이는 베이킹소다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소방관 고(GO) 챌린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소방관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안타깝게도 반짝 관심에 그쳤다.

소방공무원의 98.7%는 각 시·도 소방본부 소속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여건에 따라 근무환경이 천차만별이다. 서울은 부족한 인력이 필요 인력의 6% 정도에 그치지만 강원도는 46%, 충남·충북은 거의 50%에 이른다. 심지어 진화작업용 장갑을 소방관이 자비로 구입해야 하는 곳도 있다. 소방관들은 인력 충원과 노후 장비 교체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들이 지역 재정여건에 따라 처우가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소방관들의 오랜 염원인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일 만에 20만명을 넘어섰다. 강원도 산불을 잡으려고 전국에서 몰려온 소방관들의 헌신적 노력을 보고 많은 국민이 지지했을 것이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통한 처우개선 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의결 직전 여야 정쟁 탓에 무산됐다. 3월 임시국회에선 다루지도 않았다. 소방관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군 상위에 있다. 그러나 종사자의 직업만족도는 최하위권인 게 현실이다. 소방관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려나.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