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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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르노삼성의 생산 방정식

르노삼성은 비운의 기업이다.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 그러나 외환위기 충격에 삼성차는 프랑스 르노에 팔려갔다. 이름만 남았을 뿐, 지금은 삼성과 큰 관련이 없다. 주인은 지분 79.9%를 가진 르노다.

그런 르노삼성이 홍역을 앓고 있다. 이달 29일부터 5일간 부산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셧다운’ 결정이다. 노조 파업에 대한 경고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50여 차례나 이어진 노조 파업. 약속한 물량도 생산하지 못했다. 지난달 말에는 생산 배정 물량까지 줄였다. 올해 SUV 로그의 위탁 생산량을 작년보다 약 4만2000대나 줄여 6만대만 배정했다. 판매 부진과 생산 차질의 책임을 물어. 줄인 물량 중 상당량은 일본 규슈의 닛산 공장으로 넘어갔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일자리와 소득을 놓고 보면 한국은 줄고 일본은 불어난다. 직접적인 충격은 르노삼성 임직원이 받겠지만.

글로벌 기업의 생존방식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 르노는 일본 닛산의 주인이다. 지분 43.4%를 가졌다. 세계 곳곳에 공장이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공장은 가차 없이 접는다. 그 이유가 임금 때문이든, 파업 때문이든, 적자 때문이든. 물건이야 생산성이 높은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면 그만이다. 르노만 그럴까. 군산공장을 폐쇄한 GM, 1997년 이후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은 현대차…. 모두 똑같다. 세계화된 생산과 판매. 이곳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저곳으로 옮겨간다. 자유무역질서가 구축된 후 글로벌 기업의 생산 방정식이다. 경제국경이 사라지는 시대의 풍경이기도 하다.

일본보다도 높은 임금을 더 올리라는 르노삼성 노조. 그런 주장이 통할까. 노조만 그런 걸까. 소득주도성장 구호를 내걸고 최저임금을 미국·일본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정부. 결과는 똑같다. 기업은 공장 문을 닫고 해외로 빠져나간다. 그런 곳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자유시장경제. 그것은 세계경제의 룰이다. ‘우물 안 개구리의 눈’으로 대응하면? 경제는 고사한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은 줄어든다. 가난이 번진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걸까, 눈을 감은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