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임금인상의 역습

중국 광저우에서 기업인을 만난 적이 있다. 중국으로 간 신발 사업가다.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신발산업은 희망이 없다. 손재주 많은 한국 기술자는 중국으로 옮겼다. 그들은 신발 몰딩 기술에서 세계 최고다.”

치솟는 임금을 견디지 못해 ‘탈한국’한 신발산업. 세계 신발의 메카였던 우리 신발산업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무너졌다. 지금은 중국 임금도 비싸 동남아로, 남미로 간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 그 와중에 살아남은 구두 장인의 마지막 자존심이 숨 쉬는 곳이다. 그때 해외로 떠나지 못한 신발 기술자들. “내가 만든 구두가 최고야!” 늙은 장인은 자존심 하나로 수제화의 새 영역을 열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가업으로 물려주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일본 아버지가 자식에게 작은 생선가게를 물려주려 한 마음과 똑같다.

그런 희망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불 꺼진 성수동 수제화 거리. 올 들어 3개월 새 약 50곳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500곳이던 수제화 공장은 200곳도 채 남지 않았다.

불황의 늪, 거기에 임금까지 올랐다. 민노총은 구두가게 근로자를 부추겨 임금인상 투쟁에 나섰다. 힘없는 가게 주인들이 어찌 견딜까. 자영업자의 줄폐업이 이어진다.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는 2월 5만명, 지난달에는 7만명 줄었다. 이 수치에는 문 닫은 수제화 가게도 포함되어 있다.

임금이 오르면? 좋다. 가게 주인이 감당하지 못하면? 재앙으로 변한다. 주인이 망하고 일자리가 사라질 테니. 소상공인만 그럴까. 대기업도 똑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르노삼성 노조 파업. “임금을 올리라”는 것이다. 일본 닛산 공장보다 높은 르노삼성의 평균임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일본에서 생산하는 편이 낫다.”

임금인상의 역습이다. 소득주도성장? 자유시장경제 원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정부가 올린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하면 ‘돈 없는’ 가게 주인은 수갑 찰 각오를 해야 한다. 주인 호주머니가 바닥을 드러내면 문을 닫아야 한다. 모두 부자가 됐을까. 엉터리 정책은 가난만 불렀다.

“경제가 왜 이리 나쁘냐”고? 답은 성수동에 가서 물어보라.

강호원 논설위원